광복 80주년, 독립운동 전진 기지 부산을 보다
부산시립박물관 기획 전시
‘부산의 독립운동과 범어사’
영상 음악 설치미술 등 활용
알지 못했던 역사 입체 조명
부산의 독립운동사는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부산 시민조차 부산과 관련한 독립운동 사건, 독립운동가를 물으면 선뜻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복 80주년 기념 부산시립박물관 특별기획전 ‘광복의 시간, 그날을 걷다:부산의 독립운동과 범어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임설희 부산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시 준비부터 쉽지 않았다”며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하고자 독립운동의 증거를 남기지 않았고, 이름조차 가명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범어사가 수행 도량으로 인정받아 독립운동과 관련한 귀한 자료를 비밀리에 보존할 수 있었다. 당시 항일운동의 중요 거점인 범어사의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역설적으로 범어사가 철저히 비밀리에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알 수 있는 편지와 책, 문서는 기본이고 영상, 사진, 음악, 디지털 패널, 설치미술, AI 기술 등을 동원해 흥미롭다. 독립운동이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입체적인 사실로 느껴지게 구성해 ‘큰별쌤’으로 알려진 최태성 역사 강사가 직접 전시를 본 후 “전율이 느껴진다”고 칭찬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관객은 실제 돌과 흙, 대나무로 만든 범어사 돌담길과 대숲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도록 동선이 짜여졌다. 곧이어 대형 화면에 범어사의 풍경과 승려의 수행 모습이 펼쳐진다. 박물관이 직접 프랑스의 유명 영상 작가 장 줄리앙 푸스에게 연락해 영상 작품을 부탁했다. 장 줄리앙 푸스는 국립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전시실 ‘사유의 방(반가사유상)’ 영상을 만든 작가이다. 뛰어난 영상미와 음악에 몰입하며, 관객은 어느새 범어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1부는 ‘군막사찰에서 선찰대본산으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범어사를 군사적 거점으로 삼았고, 특히 20세기 초 일본의 종교적 침탈에 저항하며 수행 중심의 선종 본찰로 자리잡기 위해 성월 스님이 큰 역할을 했다. 유명한 스님이자 독립운동가, 시인이던 만해 한용운은 범어사를 자주 찾아 성월 스님과 독립운동을 의논했고, 성월 스님은 상하이 임시 정부까지 군자금을 여러 번 전달했다. 뛰어난 활동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성월 스님의 유품을 볼 수 있으며 미디어아트 기술을 활용해 성월 스님 초상화가 움직이며 당시 활동을 이야기해준다.
2부는 부산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범어사를 소개한다. 일제에 의해 일본 절처럼 변해가는 범어사 모습과 원래 모습을 비교하는 영상이 인상적이며, 범어사 복원 공사 중 석탑 안에서 발견된 일제의 만행을 직접 보면 탄식이 나온다. 범어사는 승려와 지역 청년을 위한 교육 기관도 설립해 운영했고, 이들이 서울에서 유학 후 다시 지역으로 내려와 지역 독립운동을 펼친 이야기도 흥미롭다. 범어사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의 그림자 영상과 실제 졸업 사진들이 양쪽으로 대비한 전시도 눈길을 끈다.
2부에선 가장 감동적인 공간이 있다. 커다란 조명 박스가 수십여 개 달려있는데 박스마다 이름과 흑백 사진이 하나씩 붙어있다.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들로 사실 아는 이름은 거의 없다. 생명을 바쳐 독립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었지만, 우리는 그들 이름조차 모른다. 이 공간을 기획한 학예사는 우리가 이름만이라도 한 번 불러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3부는 ‘부산의 함성, 대한독립만세’라는 제목이 붙었다. 일제에 의열단의 존재를 제대로 각인시킨 박재혁 열사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에서 일제 침략 실상을 알렸던 서영해의 신문 기고와 흔적들도 볼 수 있다. 음악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부산 한형석 선생의 곡을 4팀의 부산 인디밴드가 다시 편곡해 부른 노래는 귀로 듣고 마음에 맺히는 것 같다. 방 하나에 따로 전시된 안중근의 친필 유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림이 깊다.
전시 마지막은 감옥에서 광복을 맞은 대다수 독립운동가의 시점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마치 관객이 독립투사가 돼 어두운 감옥에서 환한 빛이 비치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 체험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엔딩 크레딧으로 올라가는 이름들은 정부에서 정식으로 서훈을 받은 부산의 독립운동가들 이름이다.
전시실 로비에는 빈티지 포토 부스 ‘부산 올-드 프레스’가 설치돼 있다. 영화 ‘밀정’ 속 한 장면처럼, 오래된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자기 얼굴이 들어간 광복 80주년 독립신문을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다. 전시는 광복절인 다음 달 15일까지 이어지며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