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벼락 거지
경제부 기자
‘벼락 거지’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코로나19 때였다. 코인으로 수십억 원을 벌어 퇴사를 했다는 이들의 ‘영웅담’이 전염병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주식이나 암호화폐, 부동산 등 투자 자산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월급만 그대로였다. 벼락 거지는 그런 상대적 박탈감을 자조적으로 드러낸 신조어다.
수년간 잠잠했던 벼락 거지라는 단어가 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삐 풀린 서울 아파트값이 고공행진 하면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지지 못한 이들은 또다시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때 그 돈으로 해운대에 대형 평수가 아니라, 서울 외곽에 자그만 구축이라도 샀더라면 몇억은 벌었을 것”이라는 넋두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정부의 고강도 수도권 대출 규제책 발표 이후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서울 집값은 22주 연속 상승했다. 대책 발표 전까지만 해도 강남 3구와 용산구 등의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성동구와 마포구는 일주일 새 1%가 올라 2013년 한국부동산원이 주간 아파트 가격 통계 공표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찍었다. 문재인 정부 급등기의 상승률마저 뛰어넘은 것이다.
서울 아파트는 이제 주거용이 아닌 전 국민이 눈독 들이는 투자처가 됐다. 지난해 기준 서울 외 거주자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율은 21.5%였다. 이 역시 2006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고 비율이다.
반면 지방 상황은 처참하다. 부산 아파트값은 2022년 6월 이후 3년 넘게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한 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부산의 악성 미분양 통계는 최근 3개월간 달마다 최대치를 경신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초양극화를 해소할 지방 맞춤형 대책이 절실하다. 다주택자 규제의 풍선효과로 생겨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은 지방 시장을 누르고 서울만 부풀어 오르게 하고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전국의 투자 자본은 결국 규제를 피해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지역 업계에서는 ‘정권을 누가 잡든 부동산 정책을 세울 땐 수도권만 바라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다른 처방전이 필요하다. ‘지방 부동산마저 들썩이면 어쩌나’ 걱정하며 머뭇거린다면 적기를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집값 폭등을 부추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동산 양극화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지방 시대’ 앞길을 막는 핵심 요소다. 개인 자산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묶여 있는 나라에서, 내 집값만 떨어진다면 어느 누가 그곳에 살려고 할까.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도 집값이 완만하게 상승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벼락 거지가 돼선 안 될 일이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