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주주자본주의의 명암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상법 개정, 소액주주 보호 기대 불구
기업 성장역량 약화 등 부작용 우려
장기 투자 등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오늘날 대륙별로 경제 흐름을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유럽의 뚜렷한 정체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서 유럽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면서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반면 미국은 정보화와 신산업에서 주도권을 굳게 가져가고 있고, 전체적인 성장 측면에서는 아시아의 강세가 눈에 띈다.
이러한 대륙별 성과의 차이는 각 지역의 자본주의 특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1997년 말 동아시아에 외환위기가 휩쓴 적이 있다. 우리가 흔히 IMF 사태라고 부르는 시기다. 아시아의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당시 서구는 아시아의 경제를 정실(情實)자본주의라고 몰아붙였다.
시장에 앞서 연줄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아시아적 시스템 때문에 합리성이 결여되어 결국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의 채권단이 내세운 이러한 논리가 구조조정에 적용되면서, 동아시아 각국은 무리한 개방과 긴축으로 큰 고통과 국부의 유출을 겪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앞장서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것은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시장 성과가 가장 좋다는 미국식 자본주의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기업과 건물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태평양전쟁을 촉발하였던 진주만 공습에 비유하여 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 경제를 비교하는 것이 한동안 유행을 하였는데, 일본 기업의 성공과 미국 기업의 실패를 가른 것은 기업경영의 행태와 안목이라는 시각이 널리 유포되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기업들은 다른 대륙 기업들에 비해 오너십이 강하다. 경영자는 기업의 미래를 보고 과감한 투자를 하며 미래의 투자를 위해 이익을 사내에 축적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한 단기경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경영의 효과는 연말의 수익으로 판단되고 이것은 경영인들에 대한 보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성과가 날 경우 그 수익은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에 대한 높은 배당으로 나간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이다. 이런 미국식 경영에서는 기업의 성과가 주식가격에 잘 반영되기 때문에 주주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 그렇지만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 경영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방해가 되었다는 평가가 1980년대에는 널리 인정되었다.
불법 비상계엄으로 치르게 된 조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올려놓고 취임과 동시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였다가 한덕수 권한대행에 의해 거부권이 행사되었던 상법 개정이 조만간 다시 추진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이 소액 주주들에게 보여온 행태를 돌아볼 때 상법 개정의 필요성과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막대한 이익을 얻고도 그 이익을 소액 주주보다는 대주주를 위해 사용하고, 물적 인적 분할을 통하여 재산 상속과 문어발 확장의 수단으로 이용해 온 관행들을 보면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과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상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무엇보다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면서 저평가되었던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다. 한국 증시에 실망하여 미국 증시에 이어 중국 증시로 나갔던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로 돌아오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렇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주주자본주의는 매우 달콤한 유혹이지만 잘못하다가는 단기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으로 우리의 일자리와 바꾸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다시 1980년대에 논의되었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단기 성과의 추구는 반드시 장기적으로 필요한 미래 투자에 대한 준비를 소홀하게 할 수 있다. 높은 배당은 기업의 투자 여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이 높은 기업에서는 막대한 이익의 유출도 우려된다. 특히 외국 기업 사냥꾼들에 의한 무분별한 인수 합병의 공격에 노출되는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대륙별로 그리고 국가별로 자본주의의 유형이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에서 굳어진 구조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구조들이 각 나라마다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번에 크게 바꾸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급격한 변화가 기존의 성장 동력에 위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기업의 성장 역량을 약화시켜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주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