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젊다, 모두 너무 젊다
김정화 수필가
숭고한 죽음 간직한 유엔공원
잊어서는 안 될 이름들 떠올려
세월 흘러도 여전히 젊은 그들
이국땅서 희생, 영원히 기억해야
허공에 가득 찼던 흰 꽃들이 떨어진다. 이팝꽃 때죽나무꽃이 후드득 내려앉는다. 떨어지는 것이 어디 계절 꽃뿐이랴. 떨어지는 열매, 떨어지는 풀잎, 떨어지는 이슬…. 그러나 떨어져 버린 목숨만큼 아깝고 애달픈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타인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존엄한 희생정신이다.
여기, 재한유엔기념공원에 그 거룩한 역사가 펼쳐져 있다. 숭고한 죽음이 단단한 석비로 돋아났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흔적들, 육체는 소멸되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름들만 몇 줄의 글자로 남았다. 선지자들이 만물이 하나라고 이르듯 과연 삶과 죽음도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은 육신이 흩어지는 것이니 몸속 원소도 해체되어 사라져버리는 일.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틀렸다. 육체의 질료가 다른 삶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다. 이곳 무덤에 푸른 제비꽃이 피고 녹색 잔디가 싱싱 뿌리 내리듯이 그들의 영혼과 정신은 불멸한다는 것을.
오랜 수탈에 시달려 헐벗고 가난했던 나라, 그 힘없는 나라에 전쟁은 시작되었고, 북새통에 급히 마련된 묘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공약을 내세웠던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유엔묘지 참배를 앞두고 이 허술한 묘역을 어떻게 정리하였던가. 기록을 살펴보면 부검 후 묻은 전사자의 주검을 다시 꺼내 햇볕에 말렸다가 커다란 지퍼백에 넣어 되묻었는데, 시신을 말리는 악취가 퍼졌고 전사자를 감싼 옷과 담요를 씻어낸 용당 앞바다가 붉게 물들었으며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였다. 하물며 한겨울 엄동설한에 어디에서 푸릇한 잔디를 구해올 것인지에 대해 발을 구르고 있을 때, 어느 대기업 회장의 아이디어로 잔디 대신 푸른 보리 싹을 심었다는 일화 또한 슬픈 역사로 남았다.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때의 청년들은 아흔을 훌쩍 넘긴 백발 노병이 되었고, 안장자 유족들은 물론 자식 세대도 고령에 접어들었으며, 그들이 목숨 걸고 바친 나라는 이제 세계 강국이 되었다. 그 속에 한국 청년들이 함께 누워 있다. 창녕과 영산지역 전투에서 산화한 카투사들이다. 육군 일등병 도재빈의 묘, 홍옥봉의 묘, 김록이의 묘, 오학연의 묘, 박지호의 묘를 거쳐 묘지 번호 369번, 무명용사의 묘 앞에 발길을 멈춘다. 젊다, 모두 너무 젊다.
그들 묘비 앞에서 로렌스 비니언의 ‘전몰용사를 위하여’라는 시를 아는 자라면 “살아남은 우리는 늙겠지만 그들은 늙지 않으리라. 세월 앞에 추해지거나 좌절하지도 않으리라. 해가 저물고 그리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라는 구절을 저절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안장된 전몰용사들의 전사일에 맞춰 경비팀 직원들이 매일 아침 헌화한 ‘오늘의 추모용사’를 찾아 참배하는 일도 빠트리지 않으리라.
전몰장병 중 최연소 소년병인 도은트 일병도 반드시 기억할 이름이다. 당시 호주에서는 군에 지원할 수 없는 열일곱 나이로 가족 몰래 형 이름을 빌려 참전했다. 짧은 생을 마감한 도은트 군의 넋을 기리고자 만든 작은 개울, ‘도은트 수로’에는 물고기도 살아 있음이 송구한지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 너머 대형 분수 위로 찬연히 솟은 불기둥이 있다. 높다란 기둥 위에는 빗줄기가 쏟아져도 365일 꺼지지 않는 추모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타국의 수많은 용사가 목숨을 잃은 땅, 그중 14개국 2330명이 이곳 공원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국제추모식 문구 앞에서 거듭 생각해 봐도 그들은 정녕, 너무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