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망토 대신 하이,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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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강형철 감독 신작 '하이파이브'
초능력 이식 받으며 달라진 삶
기존 히어로물과 다른 결 재미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NEW 제공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NEW 제공

여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 하늘을 날고, 적을 쓰러뜨리며,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의 서사는 식상하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는 서사 중 하나다. 7년 만에 신작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도 영웅물을 답습하는 영화처럼 보이나, 가는 길이 조금 달라 보인다. 감독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목표나 의지보다는 슈퍼히어로 그 자체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하이파이브’는 한 남자가 병원에 실려 오고 곧이어 장기기증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기를 기증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나누어준 장기는 6명의 인물을 살린다. 게다가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들은 초능력까지 생기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먼저 심장을 기증받은 ‘완서’(이재인)는 태권도 선수였으나 경기 중 심정지가 오면서 꿈을 포기한 십대 소녀다. 심장을 이식받은 후에는 학교도 다니고 친구도 사귈 줄 알았지만,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빠(오정세)의 과도한 보살핌과 관심 때문에 숨이 막힌다.

사실 완서는 심장이식 후 엄청난 괴력과 스피드가 생겨났지만 걱정 많은 아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을 때 폐를 이식받고 강풍의 입바람을 일으키는 초능력을 가진 ‘지성’(안재홍)을 만난다. 둘은 초능력이라는 공통분모로 친해지고, 장기를 기증받은 다른 사람들을 찾아본다.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초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선녀’(라미란), 각막을 이식받고 전자파 통제 능력이 생긴 ‘기동’(유아인), 간을 이식받고 치유 능력이 생긴 ‘약선’(김희원)은 자신들의 초능력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꿈꾸며, 어설프게나마 어벤져스 같은 ‘팀’을 만든다. 하지만 세대도, 성별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그들이 팀을 꾸리는 건 쉽지 않다. 특히 또래인 지성과 기동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싸우기 바쁘다. 그러던 와중에 마지막 이식자의 정체가 드러난다. 췌장을 이식받은 영춘(신구/박진영)은 5명의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빼앗기 위해 계략을 펼치며 악당의 면모를 보인다.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주인공들의 서사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보였던 그들은 병으로 고통과 싸워야 했으며,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었다. 아픈 몸은 외로움과 분노, 슬픔 속에 살게 했다. 즉 그들은 지금까지 미래나 희망 따위를 논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장기를 이식받은 후부터 달라진다. 사실 영화는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영웅이 되는 데 초점화하지 않는다. 아프고 힘들었던 그들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데 고무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언제나 혼자였던 그들이 팀원들과 유대를 통해 연대하는 데 의미를 둔다. 그들에겐 세상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건 자기 자신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하이파이브’는 익숙한 한국형 히어로물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정서적인 밀도와 인간적인 온기를 놓치지 않는다. 초능력은 이야기의 장치일 뿐, 실은 이들이 살아온 삶과 마주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아프고 외로웠던 몸,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슬픔,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어우러졌을 때 이 히어로는 빛난다.

OTT 등을 통해 한국형 히어로물은 급속히 발전해왔다. ‘무빙’ ‘경이로운 소문’처럼 초능력과 감정을 엮어내는 시도 또한 이미 익숙하게 보아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만화 같은 상상력, 지성과 기동의 티격태격, 선녀와 약선의 이야기 등 인물들의 조화가 인상적이라 새롭게 느껴진다. 특히 완서의 이재인, 영춘의 젊은 모습을 연기한 박진영 배우는 선배들의 아우라에 뒤지지 않는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데,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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