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의 디지털 광장] '폭싹 속았수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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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다양화로 전통 미디어 약화
현실 반영하듯 학계도 변화 수용

신문 매체도 부단히 다양한 모색
온라인 분야 일정 성과 이뤄 뿌듯

대세 유튜브 시장 기존 문법 거부
저널리즘 미래 위해 환골탈태해야

회사의 영상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내부 행사가 최근 있었다. 주요 발제자 중의 한 분의 발언이 충격이었다.

“〈부산일보〉는 왕년에 전국에서도 가장 잘 나가던 지역언론의 ‘맹주’였다. 지금은 힘이 좀 빠진 것 같다. 기회는 있다. 앞으로 잘해야 한다.” 영상 콘텐츠를 잘 만들고 관련 정책을 잘 펼치기 위한 일종의 집단 토론회였지만, 가장 기억나는 단어가 ‘옛날엔 힘센 존재였다’는 과거형 어법이었다. 그렇다면 〈부산일보〉의 현재는 미약한가. 자존심이 상했지만, 곱씹어보니 좀 더 잘하라는 애정어린 격려의 다른 표현이었다고 좋게 해석한다.

언론의 대명사였던 신문의 영향력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객관적인 진실이다. 어쩌면 전국 대학의 신문방송학과가 과명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 이를 반영한 결과 아닐까. 지역 대학의 신방과는 동아대가 1987년 신문방송학과를 개설한 것이 시작이다. 동아대 신방과는 2016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과명을 바꾼다. 과명이 바뀌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부산대 관련 학과의 과명 변경의 역사를 보면 보다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부산대는 1989년 신문학과를 개설했다. 이어 1993년 신문방송학과로 이름을 바꾸고, 2020년부터는 커뮤니케이션학과로 다시 과명을 변경했다. 신문의 무게 중심이 방송과 나뉘어지더니 지금은 신문, 방송, 광고, 영화, 출판, 잡지, 사진, 영상 그리고 뉴미디어로 영역을 확장했다. 동명대는 1996년 매스컴학과로 출발했고, 언론영상광고학부로 바뀌었다가 2012년 방송영상학과로 과명을 변경했다. 2015년부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존재하는데 영상 중심이라고 학과 소개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동의대는 1995년 신문방송학과로 시작해 2000년 언론광고학부가 되었다가 2006년 신문방송학과로 바꾼 이후 다시 2017년엔 신문방송과 광고홍보 학부로 나눴다. 2023년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다시 정리했다. 동서대는 아예 첫 출발인 2011년부터 신문은 배제한 채 방송영상학과로 시작한다. 관련 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들도 있었지만 학과 연혁이 홈페이지에 소개되지 않아 따로 알아 볼 수 없었다.

살펴 보면 지역 신방과 대부분이 학과명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바꿨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은 사회의 의사소통 과정을 연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단언컨대 신문사 〈부산일보〉도 그냥 머문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매체 주류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했고, 뉴미디어에도 결코 소홀하지는 않았다.

인터넷신문 〈부산닷컴〉은 지역을 넘어 전국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9년 9월 지역 신문 최초로 네이버와 모바일 기사 콘텐츠 제휴 협약을 맺었다. 이로써 부울경 지역은 물론 전국 독자들에게 지역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가 되었다. 영상 미디어 제작에도 박차를 가했다. 2011년 시작한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은 10년을 훌쩍 넘어 6300개 영상콘텐츠로 쌓은 콘텐츠의 보물창고이다. ‘부산굴기’ ‘산복빨래방’ ‘살아남은형제들’ 등의 주옥같은 영상은 물론 최근 노인 세대를 다룬 ‘노하우’와 자이언츠 새내기를 소개하는 ‘자이언츠 베이비’는 조회수가 급증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도 12만 명을 넘어섰다. 수고 많았다. “부산일보 폭싹 속았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거 아니 신문에 났대!”라는 한마디에 으쓱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상황 자체가 어리석다. 뉴스는 손안에서 영상으로 소비된다. 밥숟가락으로 기사를 독자에게 떠먹여주던 언론의 시대는 지났다. 주객이 전도된 정도가 아니라 상전벽해 수준이다. 언론 소비자는 이제 스스로 뉴스를 선택하고 판단한다. 특히 재미도 중요한 가치의 하나다. 재미 없으면 1초 만에 도망가 버린다.

한때 신문의 왕국을 위협하던 지상파 방송도 이제 레거시 미디어로 취급받아 신세를 한탄해야 하는 처지다. 현재 미디어계의 왕자는 유튜브다. 하루 평균 1~3시간을 유튜브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유튜브를 통해 습득한다. 활자 매체는 이 와중에도 ‘읽는 문화’ ‘펄프에서 오는 감성 충만’ ‘두뇌 발달’이라는 논거를 내세워 생명 연장을 도모하지만, 그 존재감은 점점 미약해지기만 한다. 언론 시장을 이 정도로 뒤집기엔 역부족일 것 같다. 이제는 ‘신문은 사라질 수 있지만 뉴스는 점점 성장한다’는 말에 기대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변화해야 생존한다.’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생명이 탄생하는 이치처럼 혁신해야 살 수 있다. 사라지는 신문 독자는 디지털 구독자로 대체해야 한다. 10년 전 종이신문의 종말을 걱정하던 독일 지역 신문은 온라인과 디지털 세상에서 미래를 찾고자 했다. 10년 후인 오늘 새롭게 등장한 AI는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기회다. 펼쳐질 신천지가 궁금하다.

이재희 디지털국 국장 jaehee@busan.com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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