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43년 만의 사과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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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찰에게 1982년 4월 26일은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억된다. 이날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서 이른바 ‘우 순경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소속 우범곤 순경이 무기고에서 꺼낸 총기로 주민 56명을 살해, 34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본인도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경찰관 한 명이 비무장 주민들을 상대로 대규모 살상극을 벌인 이 사건은 당시 건국 이래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혔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보도를 통제하면서 이 사건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당연히 추모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9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잊힌 사건’으로 전락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 희생자 추모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2021년부터였다. 당시 의령군수가 “이 사건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이 벌인 만행인 만큼 국가에 책임이 있다. 국비로 이들의 넋을 위로해야 한다”라고 국무총리에 건의하면서 추모공원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이후 궁류면 평촌리 궁류공설운동장 인근에 8891㎡ 규모 추모공원을 건립하는 사업이 본격화됐다. 추모공원 내 위령탑이 먼저 완공되면서 사건 발생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4월 26일 제1회 위령제가 개최됐다. 너무도 끔찍했던 사건에 대한 너무도 뒤늦은 해원이었다. 당시 위령제에서는 위령탑 제막에 이어 유족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등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43주기를 맞는 26일에는 제2회 위령제가 ‘의령 4·26추모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날 특별한 행사가 예고됐다. 김성희 경남경찰청장이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유가족에게 사죄와 위로의 말을 전달한다고 한다. 사건 발생 이후 경찰 책임자가 공식 위령제 석상에서 사과의 말을 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긴 세월 동안 억장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던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위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의령은 우 순경 사건 때문에 현재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정신적인 충격은 물론이고 지역 자긍심도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지난해 첫 위령제에 이어지는 경찰의 뒤늦은 공식 사과를 계기로 의령이 ‘우 순경의 악몽’을 떨쳐내고 새 시대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날 ‘의령 4·26추모공원’도 공식 준공된다. 이 공간이 참혹했던 비극의 상처를 보듬는 장소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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