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흔들리지 않게
서정아 소설가
스쳐 지나가는 경험이든
인생의 핵심 사건이든
흔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해 보는 마음의 중요성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살면서 춤을 배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일들은 특별한 의도나 계획도 없이 그냥 벌어진다. 물론 그 일도 내가 선택했기에 내 삶의 일부로 편입된 것이지만, 다른 선택지들을 두고 왜 굳이 그것을 선택했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일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경험들 중 하나가 되기도 하고,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소설 쓰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는 것은 좋아했으나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평범하고 흔한 문학 소녀였을 뿐이었는데,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내 안의 무엇을 건드렸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습작을 시작했고 어느 순간 글쓰기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경험이 될지, 인생의 핵심적인 사건이 될지, 시작하는 순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일단 시작해 본다. 그리고 노력해 본다. 그러다보면 내가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 계속 하고 싶은지 아닌지, 서서히 알게 된다.
나는 전통 예술을 좋아한다. 물론 깊은 조예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취미 수준이다. 가끔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시민 대상으로 하는 국악 강좌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아마추어 풍물패에서 장구를 치고 있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해금이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런데 올해 국악원의 시민 강좌에 뜬금없이 한국무용 과정을 신청한 것이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해금이나 가야금 강좌도 있었는데 말이다.
왜 그랬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첫 수업에 갔다. 그리고 선생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어떤 얼굴은 단 한 번 보고도 잊을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선생님의 얼굴이 그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흔치 않은 표정이 깃든 얼굴이랄까. 나는 몇 년 전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그분의 춤을 본 적이 있었다. 아무 장식도 없는 새하얀 한복을 입고 추는 ‘허튼춤’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자리에 앉아 구경을 했는데, 춤에 대해 문외한인 나조차도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드는 대단한 춤판이었다. 점차 고조되는 춤사위. 그리고 음악이 멎었을 때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소진해버린 듯이 그분은 양팔을 벌린 채 바닥에 털썩 누웠다. 그 순간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에너지를 춤에 다 쏟아 부어 완전히 소진되었으나, 그래서 오히려 가득 채워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춤을 배우게 되다니. 갸우뚱하던 마음은 대번에 사라지고 모든 게 운명인 것만 같았다. 열정이 샘솟고 수업이 기다려졌다. 물론 열정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었다. 나의 두 팔은 올라가야 할 때와 내려가야 할 때를 알지 못하고 자주 허우적거렸다. 다음 동작이 뭐지, 생각하는 순간 이미 한 장단이 지나가버렸다. 장구를 칠 때는 너무 느려서 지루하기까지 했던 굿거리장단이, 춤을 출 때는 EDM 비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한 발을 들고 한쪽 발만으로 360도 빙그르르 회전하는 동작이었다. 우아하게 한 바퀴를 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와 있어야 하는데, 내 몸은 매번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도종환의 시 구절을 떠올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래,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고 도는 몸이 어디 있을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중심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한 바퀴 돌게 될 날이 오겠지. 그리고 마침내 열 바퀴를 빙글빙글 돌아도 흔들리지 않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몸을 움직일 때면, 나의 하루가 조금은 더 단단해진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