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기로에 선 한국 영화 그리고 부산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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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초청 장편영화 0편
단편 애니 '안경', 부산 자존심 지켜
영화산업 위기 속 지역 로케도 줄어

시·영상위·BIFF 등 머리 맞대고
30주년 영화제 계기 재도약 준비를
영진위, 신진 감독 발굴·지원 힘써야

다음 달 개막하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20일 현재까지 단 한 편. 부산에서 활동하는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Glasses)이 유일하다. 장편영화의 경우 칸영화제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경쟁, 비경쟁, 주목할 만한 시선 등 모든 부문의 초청 리스트에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충격을 줬다. 우리 장편영화가 칸영화제에서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건 2013년 이후 12년 만이라고 한다. K팝과 함께 K컬처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며, 잘나가던 영화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칸영화제 초청 여부가 한 나라의 영화 수준을 결정짓는 척도라고 볼 수는 없다. 간혹 영화제 개막 전에 추가 초청작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어 정 감독의 ‘안경’을 이을 낭보가 들려올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영화계에서는 이번 성적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미 우리 영화산업은 곳곳에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 3월 극장 관객 수는 지난해 대비 4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 역시 47% 줄어들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장재현 감독의 ‘파묘’가 1000만 영화 반열에 오른 지난해 3월과 달리, 올해는 그만한 히트작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극장가의 실적 부진도 심각하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운영사인 CJ CGV가 희망퇴직과 영화관 폐쇄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던 영화관 산업은 팬데믹 이후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급성장 속에 콘텐츠 소비 패턴이 다변화하면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제작됐다 미처 개봉하지 못한 이른바 ‘창고 영화’조차도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도시’를 표방하는 부산 역시 관련 산업의 부진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촬영 지원작은 총 74편으로,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역 로케이션 촬영 수요가 줄어든 탓이다. 국내 제작사와 방송사 등이 수도권에 밀집된 탓에 대규모 인원이 이동해야 하는 지역 촬영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의 지난해 총 대여 일수도 315일(5개 작품)로, 2023년 694일(6개 작품)과 비교해 절반 이상 줄었다. 코로나19 이전에 스튜디오 대여율이 90%대를 기록하는 등 매년 ‘포화’ 상태였던 것과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부산영상위원회는 해외 작품을 적극 유치하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 영화 허브’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BIFF)도 갈 길이 멀다. 지난 2년간 공석이었던 집행위원장 자리에 지난달 BIFF 프로그래머 출신 정한석 위원장이 선임되긴 했지만, 조직 재정비 등 쌓인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올해 BIFF는 30주년을 맞아 경쟁 부문 신설 등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에 더욱 더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이런 가운데 올해 행사는 추석 연휴와 전국체전 일정 등으로 10월이 아닌 9월로 앞당겨져 행사 개최까지 남은 시간도 촉박하다.

기로에 선 한국 영화와 영화도시 부산의 재도약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산시, BIFF,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의전당 등 관련 기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영진위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등의 뒤를 이을 신진 감독의 발굴과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영상위, BIFF는 생각의 전환과 새로운 시도에 과감히 나서야 할 때다. 인천이나 대전 등 서울에서 가까운 도시들과의 로케이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영화제들이 프로그램 다양화와 영화인 참여 확대 등으로 매해 성장하고 있는 만큼 BIFF도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새 역사를 써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부산이 BIFF의 명성에만 기댄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영화도시라는 타이틀마저 다른 도시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젊은 영화인들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행사나 정책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정유미 감독은 “칸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게 영광스럽다”면서 “(이를 계기로)관객을 만날 기회가 늘어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칸 이후 한국에서도 상영을 많이 하고 싶다. 관심을 갖고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그동안 우리 영화산업을 키워온 관객들의 애정과 영화도시 부산을 지탱해 온 시민들의 열정도 지속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2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도 뜨거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

이자영 문화부장 2young@busan.com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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