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대한민국, 마약의 그늘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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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정인 변호사

마약, SNS·메신저 통해 쉽게 유통
예방 교육·사회적 감시 체계 미비
국가 차원 컨트롤타워 설치 시급
중독자 치료·사회 복귀 통합 관리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들 국가가 펜타닐(마약)의 미국 유입을 차단하지 못하고 있고, 마약 밀매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하나의 이유로 들었다. 그 이유의 합당성은 제쳐두고라도 일면 세계 최강국 미국조차 마약과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때 ‘마약 청정국’이라 불리던 대한민국의 현실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약 문제라 하면 해외 사례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뉴스에서 연예인, 유튜버, 국회의원의 자녀, 심지어 청소년까지 마약 관련 사건에 연루되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최근 강원도 강릉 옥계항에서 다량의 코카인이 발견된 사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등 충격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가 더 이상 마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과거 10년 전에 비해서 최근 몇 년 사이, 마약 유통은 단순한 지하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과 SNS, 메신저 앱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로 확산하였다. 10대 청소년이 마약을 접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마약이 ‘가볍게 체험할 수 있는 약물’로 왜곡된 채로 소비되고 있다.

마약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중독으로 인한 건강 문제, 다수의 범죄와의 연결성, 사회적 비용 증가 등은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큰 부담을 가져온다. 특히 최근에는 필로폰, 케타민, 엑스터시, 펜타닐 등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약물의 유입이 증가하며 피해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무방비 상태였나?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높았지만, 예방 교육과 사회적 감시 체계는 미비했다. 또한, 마약 사용자를 범죄자로만 보는 시선이 강해, 이들이 재활보다는 처벌의 대상으로만 다뤄지며 오히려 재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외국처럼 약물 사용자에게 치료 중심의 접근이 아닌, 낙인과 배제의 방식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와 사회는 우리 공동체의 마약 실태 점검을 통하여 다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약물 오남용과 관련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예방 교육이 시급하다. 공포 유발 방식이 아닌, 실질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마약 유통 경로가 온라인으로 옮겨간 만큼, 디지털 수사 인력을 확충하고 AI 기술을 도입해 유통 채널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약물 중독자는 범죄자 이전에 치료와 회복이 필요한 환자다. 중독자에 대한 상담, 치료, 사회 복귀 프로그램을 통해 재범률을 줄여야 한다. 넷째, 마약은 국경을 넘는 범죄다. 외국 수사 기관과의 협력, 공조 수사를 통해 해외에서 유입되는 마약 루트를 차단해야 한다. 다섯째, 마약의 문제가 이제는 우리 공동체와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마약 사용자에 대한 낙인을 줄이고, 사회 복귀를 돕는 포용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러한 실천을 담당할 국가 차원의 ‘중앙 컨트롤타워’를 설치하는 것이다. 마약은 국가 안보의 문제다. 미국의 전담 기구 마약단속국(DEA)은 자체적으로 정보 분석 시스템과 첩보망을 갖추고 있어 마약 밀매 조직을 체계적으로 추적한다. 대한민국도 이처럼 데이터 기반 수사를 통해 마약의 유통 경로, 밀수 루트, 신규 약물 트렌드 등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약 수사는 일반 형사 사건과는 다르다. 약물에 대한 화학적 이해, 중독 심리에 대한 지식, 암호화된 디지털 수사 역량이 모두 요구된다. 독립적인 기구가 있다면 전문성 있는 수사관과 분석관을 장기적으로 양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해외 마약 수사망과의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중앙 전담 조직을 설립하는 것이 절실하다. 나아가 단속만으로 마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사, 중독 예방 교육, 중독자 치료, 사회 복귀 지원까지 통합 정책을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단호하고도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마약과의 싸움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교육, 복지, 기술, 문화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다시 ‘마약 청정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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