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100세 피아니스트
2020년 7월 11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하얀 턱시도를 입고 무대로 걸어 나오던 제갈삼 전 부산대 교수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당시 만 95세였던 그는 이날 ‘제갈삼 교수 기네스 음악회’를 열었다.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악회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큰 화제가 됐다. 제갈 교수는 21세 때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인 ‘감각적인 환상곡’과 자신의 우상인 베토벤이 작곡한 ‘월광 소나타’ 1악장을 연주했다. 연주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온 힘을 다하며 유려하고 농익은 피아노 선율을 선사하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 공연에서 받은 감동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1925년 11월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제갈 교수는 올해 만 100세를 맞는다. ‘부산의 1세대 음악가’인 그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5년제 중고등 교육기관)로 진학해 피아노 특기생으로 뽑혀 교육을 받았다. 19살 때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음악 교사 생활을 시작하며 교편을 잡았다. 이후 마산중, 부산여중, 경남여고에서 음악 교사를 한 뒤 부산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로 1991년 정년 퇴임했다. 그는 한국 서양음악 역사상 최장수 트리오로 손꼽히는 ‘부산 피아노 트리오’ 멤버로 1970년 합류해 왕성한 연주를 이어갔다. 1990~1991년 부산국제음악제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부산 음악계를 대표하는 원로이자 상징적인 인물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지난 22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00세의 전설 제갈삼’이란 제목의 음악회가 열렸다. 부산청년오케스트라가 이번 음악회를 주최·주관했고,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더 날개’와 발달장애 연주자로 이뤄진 ‘앙상블 WE’ 등이 협업했다. 제자와 후배 음악인들이 뭉쳐 그의 100세를 기념하는 특별 음악회를 마련해 훈훈함을 전했다. 연주자들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제갈 교수의 자작 예술가곡과 합창곡, 피아노곡을 선보이며 100세 피아니스트의 음악 인생을 조명하고 업적을 기렸다.
이날 제갈 교수는 직접 연주하지 않았지만, 음악회 주인공 자격으로 참석해 후배 음악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기네스 음악회를 마친 뒤에도 교만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연습하겠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백순 음악회도 열고 싶다.” 5년 전 제갈 교수가 했던 다짐이다. 그의 절실한 소망이 올해 꼭 이뤄졌으면 한다. 무대 위에서 그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백순 음악회도 보고 싶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