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부디 확신을 의심하라
영화평론가
아카데미 각색상 '콘클라베'
문 닫힌 세계의 욕망과 반전
동화 같은 마지막 선택 감동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가 열리는 3월, 한국의 극장가도 소란스럽다. 각 부문 수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들이 아카데미 특별전, 혹은 기획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상영되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작품,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 등을 한 번에 볼 수 있기에 시네필들이 설레는 시즌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올해 아카데미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에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무려 5관왕을 안긴다. 미국 내 소수자와 비주류 문화를 조명하던 숀 베이커 감독은 ‘아노라’를 통해 다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작품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특히 성 노동자와 계급 문제를 익숙한 신데렐라 서사와 연결한 점은 숀 베이커이기에 가능한 연출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받은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콘클라베’가 인상적이었다. 로버트 해리스가 2016년 출간한 동명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설전, 강렬한 음악, 정교한 편집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가장 경건하면서도 성스러운 장소에서 드러나는 비밀과 욕망 그리고 반전, 인물들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확인할 때 이 영화가 왜 추리 스릴러물인지 알 수 있다.
영화는 교황의 서거로 충격에 빠진 ‘로렌스’의 뒷모습을 좇으며 시작한다.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로렌스는 충격을 받지만 그에겐 애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추기경 단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차기 교황 선출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콘클라베(conclave)’는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를 의미한다. 교황 서거 즉시 모든 추기경들은 기존의 직위가 해제되지만, 콘클라베를 지휘해야 하는 추기경 단장만은 그 직이 유지된다. 올곧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로렌스는 교황 선거권을 지닌 108명의 추기경들을 소집하고,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통제하며 선거를 이끈다.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 핸드폰이나 통신 기계를 사용할 수 없기에 추기경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오로지 투표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새 교황의 탄생은 쉽지 않다. 108명의 추기경들이 차기 교황이 되길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는 방식이기에 따로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교황이 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여 선거 운동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도 아니다.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기에 투표의 향방을 쉽게 점칠 수 없다. 영화는 사흘 동안 6번의 투표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지리멸렬한 투표가 반복되자 가장 성스러운 선거라고 자부하는 ‘콘클라베’에도 음모와 술수가 암약한다. 강경한 개혁파와 최악을 막으려 차선을 선택하는 진영이 갈등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로렌스는 그 사이에서 여러 전언과 정황을 목도하며 유력 후보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 고귀하고 순결하다고 믿어졌던 그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이때 추기경들의 욕망은 종교나 정치적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흠결 없는 인간은 없음을, 혹은 신 앞의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려주는 듯하다.
로렌스는 첫 선거를 앞두고 “확신이야말로 통합의 강력한 적이니 의심하라”고 말한다. 확신은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닫게 한다. 갈등과 분열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건 확신이 아니라 의심하고 의구심을 가질 때이다. 그런 의미로 마지막 투표에서 추기경들이 날 선 경계와 확신을 내려놓으며, 앞선 결과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할 때는 감동적이다. 그것은 동화 같으면서도 혁명적이다. 확신으로 들끓던 문 닫힌 세계에 문이 열리고 새 시대가 들어서는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