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 근무 대신 주 3일 휴무로 가는 일본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일본, 평일 더 일해 휴일 1일 추가
지자체·기업 1주 사흘 쉬기 확산
근로시간 단축 없이 워라밸 효과

한국, 조기 대선 공약으로 부상
차기 정부 논의 본격화 불가피
단계적 설계, 사회적 합의 필수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 2002년 10월 2일 자 <부산일보> 2면 하단에 큼지막한 주 5일제 반대 광고가 실렸다. ‘정부 입법 예고안대로 주 5일제를 시행하면 경제가 죽는다’는 주장이다. 근로 의욕 저하, 과소비 유발,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내로라하는 기관들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경제 5단체의 주장은 주 2일 휴무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도, 상상하기도 어려운데, 당시 주 6일 근무는 신성불가침이었고 하루 10시간 근무도 예사였다. 토요일에 오전만 일하는 반공일이 주어지면 그저 감지덕지하던 때가 있었다.

들끓는 반대를 뚫고 마침내 주 5일제가 시작됐다. 2004년 여름의 일이다. 그렇다면 주 5일제 도입으로 한국 경제는 망가졌을까. 경제성장률을 보면 기우였다는 것이 단박에 드러난다. 달러 환산 실질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였는데 이후 매년 5.2%, 4.4%, 5.2%, 5.8%로 성장 동력을 잃지 않다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2008년 3.0%로 꺾여 2009년 0.8%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듬해 2010년 7.0%로 역전했다. 성장률이 상승세를 잃지 않았다는 건 근로시간이 줄었지만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감소분이 벌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생산성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만드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10월 2일 자 <부산일보> 2면 하단 광고. 대한상의, 전경련 등 주요 경제 5단체는 주 5일제 시행에 결사 반대하면서 주요 일간지에 의견 광고를 게재했다. 2002년 10월 2일 자 <부산일보> 2면 하단 광고. 대한상의, 전경련 등 주요 경제 5단체는 주 5일제 시행에 결사 반대하면서 주요 일간지에 의견 광고를 게재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근무시간에 대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주 4일 근무제는 논란의 중심이다. 호봉제 임금 구조나 정년과도 얽혀 있고 고용 측면에서 업종별, 세대별 이해관계도 엇갈리는 고차원 방정식이기도 하다.

한국에 앞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일본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국가적 의제로 삼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정년에 대해서는 기업에 선택지를 주었는데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근로시간 역시 비슷한 접근법이다. 선택적 주 3일 휴무제가 확산되고 있다. 주 5일제와 주당 근로시간은 유지하면서 평일 근로시간을 늘려 하루를 추가로 쉬는 방식으로 주 3일 휴무제를 만들었다. 도쿄도가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등 지자체가 앞장서고 민간 기업이 뒤따르는 식으로 확되는 모양새다. 왜 주 4일 근무제로 부르지 않고 주 3일 휴무제로 부르는지, 또 왜 이런 식으로 휴무를 늘리는 것일까. 워라밸 시대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을 찾아 본다.


■ 평일 더 일하고 하루 더 쉬는 ‘3일 휴무’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지자체 주 3일 휴무제 확대’ 제목의 기사에서 평일 하루를 추가로 쉬는 방식의 주휴 3일 제도가 전국 지자체에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이 광역 지자체인 47개 도도부현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도쿄도가 4월부터 주 3일 휴무제 시행에 들어간 것을 비롯해 모두 11곳에서 주 3일 휴무제를 결정했다.

이들 지자체에서 도입한 3일 휴무제는 근무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플렉스타임제가 전제가 된다. 본인이 출근하는 날의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늘리되 주당 40시간의 법정 기준을 충족하면 평일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는 방식이다. 도쿄도는 육아, 간병의 필요에 따라 조건부 인정되던 이 제도를 올해 4월부터 대다수 직원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했다.


일본 도쿄도에서 시행 중인 주 3일 휴무제는 평일 일하는 시간을 늘려 온전히 쉴 수 있는 하루를 추가 확보하되 주당 근무시간과 급여는 유지하는 방식이다. 사진은 일본 도쿄도 청사. 일본 도쿄도에서 시행 중인 주 3일 휴무제는 평일 일하는 시간을 늘려 온전히 쉴 수 있는 하루를 추가 확보하되 주당 근무시간과 급여는 유지하는 방식이다. 사진은 일본 도쿄도 청사.

주 3일 휴무가 가능하게 된 것은 자유 근무 시간제에 해당되는 플렉스타임제가 확산된 덕분이다. 2019년 근로기준법의 플렉스타임제 조항이 개정되면서 근로시간 산정 기한이 최대 3개월까지 늘어나는 등 활용도가 높아졌다. 소정 근로시간을 채우는 조건으로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1주에 1일의 추가 휴무를 만들기 용이해진 것이다. 예컨대 월~금 닷새간 8시간씩 40시간을 근무해 왔다면 월~목 나흘간 10시간씩 근무해 40시간을 채운 뒤 금요일에 쉬는 방식이다. <위 사진 참조>

주 3일 휴무제는 총 근로시간과 임금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아래 표 참조>

우선 총 근로시간과 임금에 변화가 없는 근로시간 유지형이 있다. 사흘 쉬는 바람에 근로시간이 줄어도 급여가 동일한 급여 유지형과 쉬는 만큼 급여가 줄어드는 급여 감액형도 있는데 이 두 유형은 고용주와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자칫 갈등의 소지가 있다. 현재까지는 근로시간 유지형이 가장 일반적이다. 근로시간 단축과는 무관하게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다.

지자체 외에도 철도 회사 JR서일본이 4월부터 내근 직원 6000명을 대상으로 3일 휴무제를 시작하는 등 기업체에서도 확산되는 추제다. 대체로 근로시간과 급여를 유지하는 방식이 선호된다.

.

일본에서 시행 중인 주 3일 휴무제의 세 가지 유형. 일본에서 시행 중인 주 3일 휴무제의 세 가지 유형.

■ ‘4일 근무’ 대신 ‘3일 휴무’로 부르는 까닭

주 4일 근무제나 주 3일 휴무제는 1주에 나흘 출근하고 사흘 쉰다는 점에서 같은 말이다. 조삼모사처럼 비치는 이 어법은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의 관점에서 읽을 때 속뜻을 알 수 있다. 주 3일 휴무제는 말 그대로 쉬는 날이 사흘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노동력 제공 의무를 규정하는 주 4일 근무제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또 주 4일 근무제는 총 근로시간의 감축을 전제로 치열한 논쟁으로 흐르기 십상이어서 오해를 피할 필요도 있다. 주 3일 휴무제 명명은 근로시간 감축은 별도 논의하되, ‘더 집중해서 일하고, 남은 시간을 자신의 삶을 위해 쓰자’는 긍정적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도다. 삶의 질, 여가, 자기 계발, 가족과의 시간의 중요성을 따로 덧붙일 필요 없이 ‘사흘 쉰다’는 표현 그 자체에 워라밸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주 3일 휴무제 확산에는 전례 없는 구인난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면서 경제가 기지개를 켰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탓에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다. 구직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노동시장의 갑을 관계가 바뀌어 구직자 절대 우위 구조가 됐다.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해져서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3일 휴무제를 앞다퉈 도입하는 것이다. 실제 일본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재팬에서 ‘주 3일 휴무제’를 검색하면 ‘임금 하락 없는 3일 휴무 기업 리스트’가 넘쳐 난다. 취업 희망자가 자기 입맛대로 기업을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에 신규 유입되는 MZ세대가 어떤 기업을 선호할지는 분명하다. 기업으로서는 워라밸 경쟁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싱횡인 것이다.

지자체가 휴무 확대에 앞장선 배경에도 인력난이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는 휴무제 시행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직원들이 일하기 편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젊은 세대에서 공무원 선호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채용 시험의 경쟁률이 하락하는 상황을 이유로 분석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자체도 인재 유치 필요성 때문에 워라밸 경쟁력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 워라밸 시대에 진입한 한국의 선택은

한국에서 주 4일제가 처음 선거 공약으로 부상한 것은 2021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현재 국민의힘 의원)이 주 4일제를 제안하며 치고 나왔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4.5일제로 맞받았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꿈같은 말”이라고 일축했다.

조기 대선에 임박한 작금에 근로시간 개편과 주 5일제는 주요 정당의 의제로 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제로 이행하는 방안을 20대 민생의제에 올렸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6시간, 32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줄이는 안을 내놨다.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단축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한 주 4.5일제를 약속했다. 주 40시간제를 유지한 채 주중 근무를 1시간씩 늘려 금요일에 반일만 근무하는 방안이다.

두 정당은 서로의 방안을 혹평하고 있지만 적어도 워라밸 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과 삶의 조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 5일제에 등장한 격렬한 반대 논리와 비교해도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어느 당에서 차기 정부를 구성할 지에 상관없이 근로시간 개편 논의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미 일부 기업과 지자체에서 주 4.5일제가 시범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선행 사례를 돌이켜보면 노동생산성과 워라밸이 관건이다. 단계적인 설계, 사회적 합의 도출에 성패가 달려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