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선거·비밀선거 중 하나만?…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딜레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 상대 차별 구제 청구 재판서
법원 “적극 지원 필요” 판결에도
국가 상고장 제출로 대법 올라가
비밀선거 원칙 훼손 논쟁 거셀 듯
장애인 측은 “보통선거 우선” 주장
선거 때마다 국민의 권리인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만만치 않은 난관을 거쳐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다.
최근 발달장애인에게 투표 보조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부산일보 1월 17일 자 10면 보도)이 나왔으나 국가는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투표 보조인의 개입으로 비밀선거 원칙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 발달장애인 측 변호인단은 모든 시민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보통선거 원칙이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 발달장애인에게 투표 보조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단을 내리자 국가가 지난 3일 대법원에 상고하며 재판을 이어가게 됐다. 이와 관련, 부산고법은 지난달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 보조를 거부당한 발달장애인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 구제 청구 사건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발달장애인들은 다가오는 선거에선 본인이 지정한 투표 보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국가의 상고로 이런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됐다.
국가와 발달장애인 측은 선거 기본원칙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직접 자신의 의사를 대리할 사람을 선출하는 선거는 대한민국 헌법 제24조에서 ‘기본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보통선거, 평등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가 선거의 4대 원칙으로 꼽힌다.
국가는 법원의 판단이 비밀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상고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스스로 기표 행위를 할 수 없는 선거인의 경우에는 가족이나 선거인이 지명한 2인에게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상 투표 보조 대상은 시각·신체장애인으로 규정돼 발달장애인은 빠져 있다. 이는 비밀선거 원칙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읽힌다.
원고인 발달장애인 측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법원은 이런 규정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당시 법원은 “장애 정도에 따라 기표 행위를 할 수 있는 장애인과 그렇지 못한 이를 따로 봐야 한다”며 “일률적으로 투표 보조를 허용하면 가족 또는 일정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아 비밀투표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도 같은 논리로 대법원 재판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투표 보조자 제도는 기표소 안에 투표자 외 보조자가 함께 들어가는 제도인데 비밀투표 원칙 침해와 대리투표 우려가 있다”며 “발달장애인의 투표 편의 확대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보통선거 원칙이 더 중요하다고 맞선다. 보통선거는 모든 시민의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선거 원칙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여전히 투표 현장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는 ‘장애인이 선거권, 피선거권 등의 참정권을 행사할 때는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는 발달장애인들이 투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만큼 투표 보조를 통해 이들의 투표권과 참정권을 적극 보장해야 보통선거 원칙이 지켜진다는 주장이다.
공익법 단체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9조는 장애인에게 다른 사람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와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국가 의무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보통선거 원칙이 지켜지도록 제도적 바탕을 마련한 후 후 비밀선거 원칙을 훼손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