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은 볼 만한데…스토리도 관객 평가도 ‘브로큰’ [경건한 주말]
기나긴 설 황금연휴(1월 25~30일)를 겨냥해 개봉한 한국 영화들에 대한 관객들 반응이 떨떠름합니다. ‘히트맨2’는 6일 현재 200만 관객을 넘긴 했지만 심한 혹평이 적지 않고, 150만 관객을 모은 ‘검은 수녀들’ 역시 평점은 낮은 편입니다.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관람객 평은 좋은데 4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쳐 흥행면에서 비교적 부진합니다.
연휴가 끝나고 개봉한 ‘브로큰’은 기대를 걸어 볼 만했습니다. 지난 5일 개봉한 범죄 영화 ‘브로큰’은 하정우, 김남길, 정만식 등 이름 있는 굵직한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독립영화 ‘양치기들’(2016)로 각종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던 김진황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 개봉 직후 관객평이 아주 나쁩니다. 하정우조차 SNS에서 “그리 재미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라고 말한 ‘브로큰’을 극장에서 만나 본 후기를 남깁니다.
‘브로큰’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민태(하정우)는 한때 조직폭력배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조직을 떠나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문제가 생기면 폭력으로 해결하는 성질머리는 여전하지만, 힘들게 번 돈을 모두 제수인 문영(유다인)에게 보내는 등 아직 조직에 몸담고 있는 동생 석태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친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석태가 시체로 돌아오면서 민태의 갱생도 끝납니다. 동생의 죽음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문영의 행방도 묘연해지자 민태는 진실을 찾기 위해 쇠파이프를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브로큰’의 초반부는 기존 한국 영화들과는 색다른 면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 설명도 없이 인물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나열해 관객이 인물 간 관계나 사건의 정황을 짐작하게끔 합니다. 대사나 글로 사건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니 감각적인 느낌도 들지만, 기존 상업영화의 친절한 편집에 익숙한 관객에겐 약간의 혼란을 안길 수도 있습니다.
민태는 석태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홀로 조직을 상대합니다. 쇠파이프를 들고 여러 조직원을 상대하는 액션 장면이 화려합니다. 하정우의 액션은 ‘본 시리즈’ 속 맷 데이먼 같은 세련됨보다는 ‘올드보이’(2003)의 최민식 같은 날것의 느낌이 들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한 남자가 홀로 범죄조직을 상대한다는 스토리는 뻔하고 식상한 면이 있습니다. ‘브로큰’의 차별점이라면 베스트셀러 작가인 호령(김남길)이 엮여 있다는 겁니다. 호령이 쓴 소설 속 살인 이야기는 석태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야기와 일치합니다. 이 사실을 경찰과 민태 모두 알게 되면서 스릴러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이런 요소들로 ‘브로큰’은 중반부까지는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이후의 흐름은 맥이 풀려 버립니다. 속칭 ‘떡밥’은 많이 뿌려 놓고 회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입니다.
대기업 회장의 아들, 수상쩍은 행동만 일삼는 호령, 소설에 담긴 예고 살인의 전말,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등 갖가지 의혹과 인물들의 마찰이 속 시원하게 풀리는 대목을 기대하게 해 놓고 별다른 해소 없이 황급히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특히 영화의 ‘킥’이 될 수 있었던 호령 캐릭터를 밋밋하게 활용해 아쉽습니다. 의뭉스러운 대목들이 사실상 맥거핀에 불과하다 보니 기승전결에서 전과 결이 빠진 허무한 느낌입니다.
사건의 전개와 해결을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는 점도 아쉽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위치 추적기를 부착한 것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자주 마주칠 수가 없습니다. 핵심적인 정보가 담긴 휴대전화 속 대화 내용을 비밀번호를 풀지도 않고 알아내는 등 현실적이지 않은 대목들이 잦아 몰입을 해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민태의 혈혈단신 격투 신은 누아르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올드보이 속 장도리 액션처럼 날것 냄새가 나는 액션이 폭발하는 완성도 높은 시퀀스입니다. 다만 검은 양복을 입은 주인공이 부둣가에서 조폭들과 맨몸 액션을 펼치는 설정 자체가 클리셰인 데다 개연성이 부족한 탓에 결말부 내내 드는 허무한 느낌을 지우기엔 역부족입니다. 관객은 얼기설기 꼬인 줄을 풀어냈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는데, 그 줄을 가위로 싹둑 잘라 버린 기분입니다.
주인공 캐릭터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석태는 문영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쓰레기 같은 남편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문태는 그런 석태의 복수를 위해 문영을 집요하게 찾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선량하게 살아가는 관객이라면 문태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를 응원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김진황 감독은 지난달 제작보고회에서 “분노에 찬 민태의 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연민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럴 관객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실관람객의 평가도 좋지 않습니다. 개봉 이튿날인 6일 오후 현재 CGV 골든에그 지수가 65%에 불과합니다. 공감을 많이 받은 혹평들을 종합해 보면 부실한 서사와 흐지부지한 결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사실 이 영화는 당초 극장이 아니라 카카오 플랫폼에서 공개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처음 목적과 달리 극장에서 개봉하게 됐습니다. 또 촬영 당시 민태의 과거와 마지막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속편 시나리오 초고도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러닝타임이 좀 늘어나더라도 민태의 과거와 마지막 복수까지 담았다면 더 나은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