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미국발 자국우선주의 대응 지혜 모아야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트럼프 취임하자마자 관세 인상 강공
캐나다·멕시코 타깃 한국도 시간 문제
대격변의 시대 헤쳐 갈 준비는 됐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2주일 남짓한 현재 전 세계는 이미 미국발 자국우선주의로 대격변에 돌입했다. 트럼프는 취임 당일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행정부가 조약에 서명했어도 의회의 비준이 없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의회 비준을 거쳐야 하는 국제법적 조약이 아닌 유연한 협정의 형태로 귀결돼 국내법에 따라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틀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은 미국 정권 교체 때마다 가입-탈퇴-재가입-재탈퇴가 반복되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제협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 가운데 미국의 에너지-환경 정책도 정권 교체 때마다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대한 전면적 개편을 예고한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도입한 전기자동차 구매 시 7500달러 세액공제를 주는 혜택을 폐지하려 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내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자동차는 전체 자동차 신규 판매량의 20.2%를 차지하였고, 2024년 미국 내 전기자동차 판매 시장점유율은 테슬라 49%, 현대-기아자동차 9.3%, GM 8.7%, Ford 7.5%, BMW 4.1%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급격한 정책 변화는 한국 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에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IRA 보조금 혜택을 위해서 76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하이브리드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를 건설하여 2024년 10월 가동을 시작하였고, 한국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 SK온, LG에너지솔루션도 IRA 보조금 혜택을 위해서 대대적으로 미국 내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GM 35억 달러 투자, SK온-현대차 50억 달러 투자, LG에너지솔루션-현대차 43억 달러 투자 등이다. 따라서 IRA 보조금 폐지는 한국의 자동차와 배터리 제조사에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당 행정부와 대중국 압박 정책 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왔다. 미국의 민주당 행정부는 오바마의 TPP(환태평양 동반자협정), 바이든의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등과 같이 동맹국과의 공급망 질서 구축을 통해서 중국을 압박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일방적 관세 부과를 통해서 대중국 압박을 해왔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 관세 부과를 중국과 같은 체제 경쟁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EU,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국을 대상으로도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25%라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2018년 3월 모든 국가에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부과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에 EU,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이 반발하였다. EU는 이러한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 조치에 맞대응하였고, 미-EU 통상 갈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럼프도 EU를 적으로 언급할 만큼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EU와 미국은 2018년 7월 극적인 합의를 하면서 양측 간 무역 갈등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EU와 같이 거대 시장을 갖지 않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일방적 관세 압박에 많은 양보를 해야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한국 정부를 압박해 한국의 대미 수출 화물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를 2021년 1월에서 20년 늦추는 내용의 한미 FTA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일본에 대해서도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20% 관세 부과 압박을 하였고, 2019년 미일 무역협정이 체결됐다.
그런데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관세 압박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 조치에 맞대응 중이고, 캐나다-멕시코 간 연대도 표명했다. 트럼프는 2월 2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의 “다음 관세 부과 대상국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EU와 영국 등 다른 국가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확전을 예고했다. EU 집행위원회도 트럼프 행정부가 부당한 관세를 부과하면 보복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비해 대미 보복관세 리스트 준비를 시작했고, 이를 블룸버그가 지난해 10월 16일에 보도한 바가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제1기 트럼프 행정부 때와 같이 미국발 자국우선주의에 따른 대격변의 시기에 돌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다가오고 있는 거센 파고를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가슴이 막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