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 투표 보조 지원해야" 장애인 손 들어준 법원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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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3명이 국가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 소송 2심 승소
법원 “본인 지정 2명 보조 가능”
위자료 100만 원 지급 명령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6일 오후 2시 30분께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 2심 선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보원 기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6일 오후 2시 30분께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 2심 선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보원 기자

발달장애인에게 투표 보조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발달장애인들은 본인이 지정한 투표 보조자의 도움을 받아 투표권과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16일 부산고법 민사2-2부(부장판사 최희영)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 보조를 거부당한 발달장애인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청구 사건에서 1심 판결을 뒤엎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인 원고들이 본인이 지명하는 2인의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지침에 지적 자폐성 장애인에게 심리·사회적 어려움이 따를 경우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문구도 포함하도록 했다. 다만, 투표 보조원에 대한 사전 교육을 제공해 달라고 한 원고 측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이번 부산 판결에서는 원고들에게 각각 100만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했다. 판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익법단체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좋은 결과가 나와서 감사한 마음이다. 부산에서는 서울과 달리 원고들의 손을 더 들어준 부분이 있는데, 위자료를 100만 원씩 지급하라고 인정한 부분”이라며 “선관위는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고 상고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A 씨 등은 2022년 3월 4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위해 사회복지사들과 부산 남구 한 투표소를 방문했으나 투표 보조를 받지 못하자 이번 소송을 냈다. 당시 A 씨 등과 동행한 사회복지사는 기표소에 동반 입장해 투표를 보조하겠다는 뜻을 투표사무원에게 전했다. 하지만 투표사무원은 발달장애가 있는 A 씨만 기표소에 들어가도록 했다.

또 다른 발달장애인 B 씨도 비슷한 불편을 겪었다. B 씨는 홀로 기표소에 들어갔으나 시력이 나빠 불편을 호소했고 사회복지사가 아닌 투표사무원의 지원을 받았다. C 씨도 사회복지사와 기표소에 들어가려 했으나 ‘사회복지사는 가족이 아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사 대신 투표사무원 도움을 받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지침상 발달장애를 포함한 신체장애로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명에게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었지만, 2020년 해당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 공직선거법상 투표 보조 대상은 시각·신체장애인으로 규정됐다는 이유였다. A 씨 등은 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 편의를 다시 제공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당시 법원은 장애 정도에 따라 기표행위를 할 수 있는 장애인과 그렇지 못한 이를 따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률적으로 투표 보조를 허용하면 가족 또는 일정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아 비밀투표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같은 취지의 소송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인정하며, 선관위에 투표 보조 편의 제공이 필요하다고 명했다. 투표관리 매뉴얼에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허용 내용 명시 등을 선고하기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이번 부산 항소심 판결에서도 제대로 된 결정이 나와서 앞으로 투표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필요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투표할 수 있게 됐다”며 “선관위가 판결에 따라 매뉴얼을 잘 만들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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