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SFB 실케 슈트렘라우 위원장 “국가, 녹색금융 궁극적 비전 내놔야”
녹색채권을 포함한 지속가능금융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 사이에서 자본의 뜻대로만 굴러가기 쉽다. 독일에서는 지속가능금융 정책에 다양한 의견이 균형 있게 반영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2019년 대안적 조직인 지속가능금융 자문위원회(Sustainable Finance Beirat)가 탄생했다.
위원회는 2022년부터 2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실케 슈트렘라우 위원장은 30년 넘게 지속가능한 금융 시장이 사회 생태학적 변화를 촉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다. 지난해 10월 취재진은 독일 현지에서 직접 그녀를 만나 위원회의 역할과 의미, 녹색채권 등 지속가능금융 분야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지속가능금융자문위원회(SFB)에 대해 소개해달라
2019년 독일 총리 산하 지속가능한발전을 위한 차관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출범했다. 2018년 EU에서 지속가능금융 행동 계획을 만들었고, 그에 따른 독일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또 당시 은행계 로비 연합이 정부 부처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독립적인 기구인 자문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부의 정책에 자극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34명의 자문위원과 19개 감시기관으로 구성된다. 자문위원은 금융계, 기업, 시민사회, 학계 총 4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위원회가 제시하는 여러 제언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흘러 들어가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지속가능성을 1~5로 지수화해 등급화하자는 개념의 'ESG 신호등 체계'를 제언하기도 했다. 이 제언은 정부가 채택해 EU에 제안하기도 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지속가능금융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를 것 같다.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목적의식은 무엇인가?
처음에 무엇을 우리의 대의로 내세울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고, 우리의 비전으로 정리했다. 구체적으로는 파리 협약의 목적을 준수하고, UN SDG 목표를 준수하고, 전 지구적인 가치를 중점에 둔다는 3가지 대의를 내세우기로 했다.
우리의 토론은 지난한 과정을 겪는다. 주제마다 다르지만 빠르면 최종 결정까지 4주 정도 걸린다. 사실은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약관에 따라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정하는데, 회원 절반 이상 투표하고 또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결정이 내려진다. 여러 의견을 모아서 깊게 토론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제안서는 절반 이상이 찬성을 얻고 통과된다.
-자문위원회는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 등 금융감독기관과도 협업하는가?
독일 내 금융감독기관에는 연방금융감독청과 연방은행 두 곳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기관은 자문위원회의 상설 감시기관에도 참여하고 있다. 자문위원 34명에게 강연도 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하는 그런 관계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연방금융감독청에 권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감독청이 어떤 규제책을 만들려고 하는데, 만약 그 정책이 지속가능성 분야 투자를 저해할 경우 위원회가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감독청이나 연방은행 등도 사실 은행계와 의사소통을 더 많이 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NGO 측과는 아예 의사소통 통로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위원회는 정부가 만들었고 정부 정책에 대해 제언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이들도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 독일은 2020년부터 녹색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독일은 녹색채권 시장이 잘 발달해 있다고 생각한다. 녹색국채 없이도 이미 잘 형성되어있고, 국가 말고도 채권을 발행하는 기관이나 은행이 많이 있다. 은행도 녹색채권을 재투자하는 데 활용하는 등 잘 굴러가는 모습이다.
녹색국채가 꼭 있어야 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독일 연방이 녹색국채를 만드는 시도가 녹색채권 시장을 더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기존 녹색채권 시장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녹색국채가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국채 발행으로 확보된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들이 탄탄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렇게 국채로 모은 돈의 정확한 활용이다. 정확하게 좋은 프로젝트로 들어가는지 확실해야 한다. 세 번째는 제삼자의 검사다. 객관적으로 감시하고 검토, 인증하는 절차가 정확해야 한다. 네 번째는 투자자들의 관심이다.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채권을 사야 시장이 돌아간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
-녹색채권 시장,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기업들은 규제가 심해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보고서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 결국 효용이 크지 않다는 식의 원성을 많이 한다. 그런데도 기업이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목적은 마케팅이다. 효용이 없음에도 회사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2차 시장에서는 분명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가 심한데도 많이 발행한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규제와 그린워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게 아주 중요하다. 어떤 것이 정말 ‘그린’한가에 대한 기준은 투자자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제품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기준이 너무 엄하면 안 되고, 효율적인 규제를 하면서 한쪽으로는 발행인들에게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 위축되지 않도록 균형을 찾아야 한다.
큰 그림으로 보자면 국가가 궁극적인 비전을 내놔야 한다. 녹색채권은 사실 큰 그림을 구성하는 하나의 제도다.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정부의 뚜렷한 목표 아래 인프라 구축, 금융상품의 투명성 등에 나서야 한다. 여러 요소가 같이 작용하며 균형을 찾아가야 하고, 위원회처럼 충분한 토론과 대화를 하는 건 바로 그것을 위해서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