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탄핵 정국이 개헌 적기… 대안은 대통령 중임제” [함께 사는 세상 2025]
정치학자 24인이 보는 개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그 원인을 분석하고 정국 혼란을 타개할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른바 ‘87 헌법’이라 불리는 현행 헌법 체계에 대한 회의감도 짙어져 개헌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의 원인을 ‘21세기 정치학회’ 소속 부울경 정치학자 24인에게 물었다. 답은 갈렸다. 흔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13명(54.2%)의 학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답변은 11명(45.8%)이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학자들은 대부분 비상계엄의 원인을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부족한 리더십이라고 봤다.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준석 교수는 “계엄이 동일한 제도의 이전 대통령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며 “제왕적 대통령제는 큰 문제라고 보지만 계엄 사태가 이 제도에 기인한다고 보는 주장은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부산대 이주경 사회과학연구원 역시 “근본적인 요인은 제도보다는 행위자인 대통령 본인”이라며 “동일한 대통령제하에서 계엄을 구체화하고 실행한 지도자는 1인뿐”이라고 말했다.
역으로 야당의 비상식적인 정치 행태가 계엄을 야기했다는 학자도 있었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손기섭 교수는 “대통령의 국회를 견제할 권한이 빈약한 상황에서 야당이 탄핵 남발 등으로 행정부를 무력화하려 한 것이 비상계엄의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이번 정국이 개헌의 적기인가’라는 질문에는 학계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5명(62.5%)의 학자가 ‘개헌의 적기’라고 답했고, ‘적기가 아니다’라고 답한 교수는 9명(37.5%)이었다.
개헌이 적기를 맞았다고 보는 이들은 개헌이 이뤄진다면 그 주체가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 주도로 시민 사회의 지원을 받는 방식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동서대 민석교양대학 배수한 교수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주도권을 가지고 책임 있게 진행해야 절차상의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이미 30년 이상 고착화된 5년 단임제로 정치와 민심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만큼 해결책을 찾는 노력으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다.
‘개헌을 할 경우 현행 대통령제를 개선할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는 ‘대통령 중임제’라는 답변이 많았다. 중복 응답을 통해 받은 답변 중 대통령 중임제를 꼽은 학자가 절반에 가까운 11명(45.8%)이었다.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장기간 지속된 제도로 국민의 이해도가 높고, 정치적 합의가 그나마 쉽다는 점을 꼽았다. 부경대학교 일어일문학부 김숭배 교수는 “한국의 역사에서 대통령제는 이미 경로 의존성이 있다”라며 “의원내각제는 한국의 정치 문화에서 보았을 때 쉽지 않아 4년 연임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가 그나마 적합하다”고 답했다.
대통령 중임제 외에도 ‘의원내각제’(7명, 29.2%), 이원집정부제(2명, 8.3%)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제도 개선보다 ‘현행 제도 안에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치적 양극화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이라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 의원내각제를 대안으로 꼽은 부산대 교양대학원 김태완 교수는 “6공화국 대통령제의 폐해는 이미 3차례의 탄핵소추와 1차례의 탄핵 결정, 친인적 비리 등 차고 넘친다”면서 “국민의 성숙한 민주 의식을 바탕으로 내각제로 전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급부상한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헌법만 개정되면 모든 정치적인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거란 발상은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다. 동서대 민석교양대학 이성수 교수는 ‘지금 꼭 개헌이 필요한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 교수는 “개헌 없이도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민주화된 사회인데 좌편향 단체 주도로 개헌의 군불을 때는 데 우려가 앞선다”면서 “최소한 여당과 야당이 국회 안에서 서로를 제어할 수 있는 정치 지형이 되었을 때 개헌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인제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이상협 교수도 마찬가지로 “개헌은 국민투표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양당이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개헌을 다룰 것이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21세기 정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신라대 정치학과 이동윤 교수는 계엄 사태와 정치적 혼란 수습에 개헌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려도 크다고 정리했다. 아울러 정치인의 결여된 민주시민 의식을 높이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오랜 기간 논의되어 왔던 개헌이 다시 부상하고 있고 4년 중임제 정도의 원포인트 개헌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이론적인 관점의 답변”이라며 “개헌에 앞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집단부터 민주적 질서를 새롭게 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논의가 건강해질 것이라는 게 학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