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부산시, 돈 안 된다고 문학을 우롱하나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나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글은 돈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돈과 큰 인연 없이 살아온, 평생 글만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100명 가까이가 지난 28일 부산시청 앞에 모였다. 부산문인협회·부산작가회의·부산소설가협회·부산시인협회·부산여성문학인협회는 물론이고 부산불교문인협회·부산가톨릭문인협회·부산크리스천문인협회까지 15개 문인 단체가 유례없이 참석해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토막 부산문학관 건립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제대로 된 문학관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 지역 문인들은 벌써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04년부터 부산문학관 건립을 염원해 왔다. 지역 문인들은 부산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도립 문학관이 없는 지역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마음이 급한 지역 문인들은 부산문인협회 중심으로 십시일반 모아서 이미 문학관 건립 기금을 1억 원 이상 적립해 두었다.
부산시는 여론에 떠밀려 2021년에야 부산문학관 건립 논의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부산문학관 건립 예정 부지 4곳 중 어린이대공원 입구로 결정되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부산문학관 추진위원회와 부산시가 금정구 만남의 광장에 문학관을 짓기로 합의한 것이 지난해였다.
하지만 8월 28일에 열린 부산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에서 부산시는 갑자기 문학관 건립을 위한 당초 예산 290억 원을 121억 원으로, 건축 연면적은 4000㎥에서 1891㎥로 줄여서 보고하면서 파행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성 점수가 낮아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추진위원들이 기존 안보다 58% 감액된 예산안에 대해 거부하자, 부산시는 중간보고일 뿐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지난 16일 다시 열린 추진위원회에서 부산시는 문학인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대안이라면서 중간보고 때에 비해 문학관 건물을 한 층 증축하는 새로운 방안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금정문화회관 관계자들이 문학관이 금정문화회관 주차장 부지 일부를 흡수하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기에 할애할 부지가 없다고 호소해 문학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이는 부산시와 금정문화회관이 서로 조율하면 될 일이었다.
반토막 부산문학관 건립 계획을 취소하라는 기자회견이 있던 다음날 <부산일보>에는 “부산시가 부산문학관 규모를 일단 확정했고, 예산 290억 원을 투입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부산문학관 건립을 추진해 온 문인들이나 추진위원회 회의에 참가해 온 기자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반토막 부산문학관 건립 계획을 취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 이유는 별로 없었다.
정작 부산시의 설명은 궁색했다. 문학관 건물을 한 층 증축하는 부산시의 대안(그것도 1층은 주차 전용 필로티)은 당초 예정 면적과 유사하기에 반토막이 아니라 예산이 원안대로 회복되었다는 주장이었다. 부산시가 회의 자료에 예산이 290억 원으로 회복되었다고 기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반토막 부산문학관 건립 계획을 취소하라”는 이날 기자회견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예산이 290억 원으로 회복되었다는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의에서도 가장 중요한 예산 복구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부산시는 “문학인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문학인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부산시의 설명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 이유다.
문학인들이 화가 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인접 예술인 미술과 음악에 비해 문학이 지나치게 홀대받고 있다는 인식이다. 부산에 시립미술관이 두 곳이나 있는데도 부산시는 현재 적극적으로 퐁피두 센터 분관 유치에 나서고 있다. 퐁피두 센터 분관은 부산엑스포 유치 명목으로 중앙투자심사를 면제받았다고 알려졌다. 훨씬 규모가 작은 부산문학관에는 중앙투자심사 운운하며 예산을 깎으려 드니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 분야 역시 3000억 원이 소요되는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있고, 부산콘서트홀은 내년 개관을 앞둔 상태가 아닌가.
반토막 부산문학관 예산이 슬그머니 원상 복구가 된 것 같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부산시가 당장 돈이 안 되는 문학을 홀대하다 못해 이제는 우롱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돼 버렸다. 예산이 복구되었다고 해도 깨어진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지 모르겠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