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김한나 부산교사노조 위원장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우수한 인재는 도성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그것은 입학할 대학을 고르는 시점부터 시작된다. 부산 소재 고등학교의 전교 1등 학생들이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소재 대학에 지원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왜 부산에 머무르지 않냐고 묻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지방을 떠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소멸 위기가 현실화된 시점에서 이런 인식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한때는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제외한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하느니, 지방 소재 거점 국립대학교(이하 ‘지거국’)로 진학해 지방에 남겠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학생들은 서울에 자리한 대학이라면 어떤 학교라도 지거국보다 선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에는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인원을 제외해도 그런대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출생 문제가 심화하면서 각 지역 대학은 인재 선발은커녕 정원 확보조차 어려워지고 폐교 위기도 속출하고 있다. 교사들이 아무리 노력해서 학생들의 역량이 성장하고 좋은 성과를 내도, 아니 좋은 성과를 낼수록 지역사회 기반은 무너지는 역설이 학교와 지역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 학생 개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수한 사회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는 서울로 진학할 수 있게 도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수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 서울로 집중하면 할수록 지방소멸은 가속 페달을 밟게 된다. 2020년 이후 수도권 인구수가 지방 인구수를 넘어섰다. 수도권의 교통편은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일자리 수도 지방의 그것을 이미 넘어섰다. 우수한 인재들이 기업체가 집중해 있는 서울로 향하는 것은 기본값이 되었다. 서울 소재 대학 간의 지식 교류, 그를 통해 얻는 실제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이 기반이 돼 서울에서는 혁신이 연이어 일어나고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파생된다. 서울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서울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고, 덕분에 서울 소재 대학은 서울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위상이 나날이 높아진다.
이러한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지방을 떠나지 않아도 지방에서 터를 잡고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핵심이다. 주요 대학과 기업의 지방 이전이 정책적으로 더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지방을 살리겠다고 혁신도시가 추진되던 시기, 부산시는 남구 문현동 일대에 금융혁신도시를 조성해 국제금융도시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몇몇 공기업이 이전했을 뿐, 주요 은행 본사 어디 하나 들어오지 않았고 산업은행 이전 향방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자체적으로 파급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감 있는 기업체와 서울권 주요 대학의 대대적 이전만이 지역 간 격차를 좁힐 수 있다.
제2의 도시인 부산마저도 서울과의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인구의 수도권 편중은 국가소멸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보다 수도권 집중도가 더욱 심각한 태국이 중진국 상태에서도 이미 합계출산율 0명 대로 진입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은, 학교에 온갖 사업을 벌이며 행정 업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기업과 대학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때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 부산을 비롯한 각 지역 학생들도 가정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대학에 통학하며, 월세방을 전전하지 않고 자라난 지역에서 자리잡을 수 있을 때 공교육과 지역사회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