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미디어 비평 유감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알고리즘 시대, 뉴스 평론도 진화해야
전문성 갖춘 비판이 언론 성장에 보탬
사회가 바라는 매체 미래 방향 그려야
언론은 사회 각 부문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일을 하지만, 간혹 반대 입장에서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바로 미디어 비평이 그렇다. 비평 형태로 가해지는 비판과 질책 중에는 종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비판도 많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언론 종사자들이 미디어 비평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은 드물다. 미디어 비평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에는 불쾌감과 더불어 무관심, 냉소, 무시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얼마 전 기자 출신인 장강명 작가가 SNS에서 특정한 인물을 지목해 미디어 비평을 비판하면서 기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나서 화제가 됐다. 아마 이 논쟁은 미디어 비평의 현주소를 돌이켜보는 희귀하면서도 유익한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디어 비평에 대한 장 작가의 비판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부분으로는 비평의 전문성 문제를 들 수 있다. 미디어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일반인들조차도 나름대로 잘 안다고 착각한다. 특히 미디어 이외 분야의 학자들은 별다른 전문 지식이나 경험 없이도 미디어 비평 정도는 쉽게 쓸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언론의 특성과 현장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비평은 현실과 겉도는 공허한 이야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정보를 글로 써내는 직업이지만 시간, 불확실성과 싸우는 조직 활동이기에 다른 글쓰기 형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취재원이라는 간접적 출처에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취재 부서마다 기사의 특성도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언론이 지엽적인 소재만 다룬다’, ‘심층성이 부족하다’, ‘대안 제시가 없다’라는 만병통치약식 지적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단거리 주자에게 철학자다운 사색과 깊이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비슷하다. 언론도 변화해야 하지만 미디어 비평 역시 더 전문적이고 현실에 맞게 발전해야 한다.
미디어 비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는 비평의 표적으로 삼을 대상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미디어 비평은 1980년대 말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당시와 달리 지금은 기사 선정, 제공, 소비가 언론사라는 패키지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전형적인 패턴은 신문사 기자가 기사를 취재해서 작성하고, 포털이 유통시키면 이용자가 모바일로 보는 식이다. 이용자가 느끼는 언론 보도의 문제점은 여전하되, 책임 소재는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이용자가 접하는 보도가 지엽적이고 자극적인 것뿐이라면, 이는 언론사 잘못일 수도 있지만, 이용자 자신의 습관에 기반한 뉴스 선정 알고리즘 탓일 수도 있다. 비평 역시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맞춰 진화할 필요가 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미디어 비평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많다. 미디어 비평과 가장 가까운 언론학에서도 비평의 근간이 되는 ‘규범적’ 차원에 관한 연구는 연구자의 주목도가 가장 낮은 분야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비평은 필요하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비평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업계의 반응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화 비평은 업계과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영화 비평이 발달하면서 영화 소비층의 저변과 깊이를 확대하는 긍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이 발달한다면 이와 비슷하게 언론의 성장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디어 비평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언론이 종사자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평은 현실에 대한 이해와 이상적 미래 구현의 희망 사이를 오가는 활동이다. 물론 외부인에게 아무리 부조리와 모순투성이로 비칠지라도 특정 업계의 관행은 수많은 현실적 여건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사회적 지탄 대상이자 장 작가의 자부심에 근거가 된 법조 취재를 떠올려보라. 그렇지만 불가피한 여건을 핑계로 모든 부조리한 관행이 사회에서 용인되지는 않는다. 언론은 대개 사기업이면서도 우리 사회를 떠받드는 기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은 사기업 종사자 신분에 비해 과분한 대우와 특혜를 누리며 직업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현재 종사자의 역할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미래의 언론에 대한 도덕적 기대치가 포함되어 있다.
미디어 비평은 이러한 기대치를 어느 정도 전제하고 이루어진다. 미디어 비평은 기자들이 원하는 대로 언론의 ‘어려운’ 현실을 잘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바라는 이상적 잣대에 따라 언론이 앞으로 변화할 방향을 그려 나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미디어 비평이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은 절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린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