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붕괴하는 지역 응급실 체계, 의정 협의는 요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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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응 지나치게 안일, 현실 직시해야
의사들도 현장 지키는 동료 곁 돌아가길

지난 4일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에 현재 남아 있는 의사가 고작 30여 명이라고 한다. 몹시도 위태롭다. 올해 2월 의정 갈등 직전에는 그 수가 70명에 달했다. 불과 8개월 사이에 절반 이상 준 것이다. 집단 사직으로 전공의가 대폭 빠져나간 데다가 기존 의사들이 격무를 이기지 못하고 사직서를 낸 탓이다. 부산만 이런 게 아니다. 응급실 의사 부족은 전국 사안이다. 수도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응급 환자가 의지할 데가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수억 원의 연봉을 준다 해도 응급실에 오겠다는 의사가 없다. 이러면 병원들은 응급실 운영을 축소하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국민 생명이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놓였다.

지난달 17일 부산에서 30대 응급 환자가 병원 90여 곳으로부터 수용을 거부당한 끝에 심정지로 사망했다. 응급실 의사 부족 상황이 지속되면서 고통이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수치로 더욱 분명해진다. 올해 8월 전국 기준으로 ‘응급실 뺑뺑이’라 부르는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모두 3597건으로, 이미 작년 전체 건수의 85%를 넘어섰다. 그나마 이 통계는 119가 실제 응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한 사례만 뽑은 것이다. ‘전화 뺑뺑이’는 빠진 수치다. 현실에서 응급실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 국민들 사이에서 ‘언제든 원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국가 의료체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정부는 전국 응급실 대부분이 24시간 운영되고 있고 응급실 병상수도 평시와 큰 차이 없다고 밝혔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는 해도 현재 응급의료체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상진료체계는 원활하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런가 하면 한덕수 국무총리는 응급실 뺑뺑이로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지적에 “가짜 뉴스”라고 반발한 바 있다. 작금의 응급실 사태는 근래 새로 발생한 게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 지나치게 안일하다. 겉으로 드러난 게 다가 아니다. 응급실 문을 열었어도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부는 당장에 응급실 대란은 없지 않냐고 주장한다. 겉으로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속사정까지 온전한 것은 아니다. 응급실 의사 급감은 엄연한 사실이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미 탈진 상태인 기존 의료진이 얼마나 버틸지도 의문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그에 맞는 대응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의료계도 의료윤리를 되새기며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힘들게 현장을 지키는 동료 의사들을 비아냥대는 블랙리스트 유포 따위는 국민적 공분만 살 뿐이다. 의료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시스템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편견을 거두고 머리를 맞대면 해결책은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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