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현대차 생산 '1억 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쌀가게 경일상회 주인인 아산 정주영은 ‘아도써비스’를 인수한다. 일종의 자동차 정비소였는데, 이를 서울에서 운영해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아무리 큰 고장도 무조건 3일 이내, 완벽하게 수리한다는 사업 철학은 통했다. 당시 자동차는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고 부유층에게 비용보다는 빠르고 정확한 날짜 안에 수리해 주는 게 중요했다. 자동차 정비 사업은 해방 후인 1946년 만든 현대자동차공업사가 뒤를 잇는다. 이 역시 서비스 업종이었으므로 여기까지는 현대자동차의 전사(前史)일 뿐이다.
당시 자동차 생산은 강대국,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자동차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의 설립은 1967년에 이뤄진다. 여기서 자동차 최강국 미국 포드사의 2세대 모델 ‘코티나’를 조립한 게 그로부터 1년 뒤였다. 이 현대차 1호 차량을 만든 곳이 바로 울산공장이다. 현대차의 발전을 실질적으로 견인한 것은 1975년 나온 국내 첫 독자 모델 ‘포니’였다. 이탈리아의 신생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모험에도 불구하고 한국 자동차로는 첫 해외 수출에 성공한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현대차는 소나타, 엑셀, 아반떼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를 출시하며 국내외에서 히트를 쳤다. 글로벌 누적 생산량이 1986년 100만 대, 1996년 1000만 대를 차례로 돌파한 시절이었다. 여기에는 1991년 독자 개발한 알파 엔진이 기술 독립의 중대한 계기를 마련한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가성비 좋은 싸구려 승용차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길은 품질밖에 없었다. 2000년대 들어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기술 혁신, 성능 향상에 주력한 이유다. 고급차 브랜드인 에쿠스, 제네시스가 출범한 것도 이때다.
현대차가 최근 또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 회사 설립 57년 만에 달성한 글로벌 누적 생산량 ‘1억 대’(지난 9월 30일 기준) 기록이 그것이다. 대표적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비교해도 가장 빠른 수준이다. 특히 현대차에 기술을 전수하던 일본 미쓰비시가 수렁에 빠진 현실은 격세지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1억 대라는 규모는 감이 잘 안 잡힌다. 아반떼(전장 4570㎜)를 기준으로 1억 대를 한 줄로 세우면 45만 7000㎞ 길이로 지구 둘레(약 4만㎞)를 11.4바퀴 돌 수 있다. 현대차의 미래는 이제 친환경·자율 주행·스마트 모빌리티다. 문명의 첨단, 생명을 지키는 안전까지 두루 껴안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