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구·경북 행정통합 무산'과 타산지석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첫 성공 기대 모은 대구·경북 행정통합 무산
쟁점 ‘청사’와 ‘시·군 권한’ 문제 접점 못 찾아
부산·경남, 10월 시민 의견 듣는 절차 들어가
단체장 아닌 주민 뜻 중심 ‘상향식’에 큰 기대
전국에서 첫 광역자치단체 통합 사례로 예견됐던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결국 무산됐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올해 5월 행정통합 추진을 공식화한 지 100여 일 만이다. 통합 시너지 효과 등을 기대한 주민들에게 추진 과정에 발생한 상처와 갈등만 남긴 꼴이 됐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그동안 의좋은 형제였던 대구와 경북 간 불신과 갈등의 불씨만 키운 결과로 이어졌다.
무산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통합 핵심 쟁점인 청사 위치와 시군 권한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똑같이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부산시와 경남도로선 대구·경북의 추진 과정과 결과를 두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통합 논의 과정에 제기된 핵심 쟁점 사항의 상당 부분에서 접점을 찾았지만, 막판까지 청사와 시군 권한 문제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좁히지 못한 건 사실이다.
통합 시도 청사를 어디에 둬야 할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각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초 지자체 권한도 대구시는 시군 사무 권한을 대구경북특별시로 조정하는 방안을, 경북도는 시군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각자 주장의 핵심에는 대도시와 도농복합도시 특성과 역할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부산과 경남도 똑같다.
부산은 해양을 중심으로 하나의 대도시지만, 경남에는 해안과 내륙이 혼재하는 도농복합형 중소도시가 많다. 경남은 18개 기초지자체가 있지만 인구 50만 명이 넘는 곳은 창원과 김해 두 곳 뿐이다. 나머지 시군은 인구는 적지만 지역색이 강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행정통합 논의가 본격화하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청사 위치와 시군 권한 문제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경남은 동부와 서부 간 개발 수요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다르다.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경남은 낙후된 지역개발 요구가 높고, 김해·양산을 중심으로 동부경남은 인구는 많은데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이 혼재한다. 통합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잠재돼 있던 지역 차별 의식과 민원이 봇물처럼 쏟아질 전망이다. 대구·경북의 경우 통합 논의 과정에 대구보다는 경북에서 더 많은 비판과 문제점 지적이 많았다.
경북도의회 일부 의원은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시도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순식간에 후딱 해치워 버릴 사안이 아니다”면서 “도지사와 시장 간 엇박자로 행정력은 낭비되고 있고, 결국 도민들은 행정통합이라는 대의보다는 두 단체장의 정치적 전략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적이 상당 부분 설득력을 얻었다.
2019년부터 추진됐다 무산된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올해 5월 17일 홍 시장이 전격 제안하고 이 도지사가 화답하면서 재추진됐다. 곧바로 태스크포스를 구성, 실무 논의에 들어갔다. 두 단체장이 통합이라는 큰 그림에 의견을 모았고, 미래지향적 행정구역 개편을 준비해온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통합 작업은 초반부터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이 속도감이 오히려 독이 된 요인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자치단체 주인인 주민 의견보다 두 단체장의 전격적인 합의와 일방적 추진이 주민의 대표기관인 경북도의회를 자극한 측면도 있다. 대구·경북 사례를 보면 자치단체 간 통합의 결정적 요인은 속도보다는 방향성이다. 단체장의 일방적 결정보다는 주민 의견을 묻고 여론을 살피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다.
부산과 경남은 상향식 추진으로 통합의 방향을 잡았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를 오는 10월 둘째 주께 출범시킨다고 한다. 시장과 도지사가 주도하다 무산된 대구·경북의 하향식 행정통합과 달리 부산·경남은 공론화위를 통한 상향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대구·경북 사례에서 보듯 행정통합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통합 추진에 앞서 통합 방안 연구와 전략 수립이 있었음에도 한 순간에 무산될 수 있는 지난한 과정이다. 통합 시도 명칭에서부터 청사 소재지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다. 각 지역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숱한 난관을 넘어야 한다. 부산과 경남이 대구·경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오는 10월 출범 예정인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역할에 더욱 관심이 간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