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방황하는 북항, 방관하는 부산시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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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해양수산부장

불과 1년 새 북항 예찬론이 비관론으로
뛰어난 입지 불구 ‘공회전’ 지자체 책임
항만 당국 의지 말고 ‘주인 의식’ 되찾길
랜드마크 개발·브랜드 사업 등 주도해야

“해운대, 광안리 다음 (부산의 중심은) 북항 아닙니까?” “해상도시도 만들고 천지개벽한다던데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북항은 ‘매우’ 특별했다. 공과 사를 떠나 취재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북항·가덕신공항 예찬론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탈 부산’급 개발 계획에 2030월드엑스포 유치 기대가 기름을 부은 결과다. ‘잘 돼야 한다’보다는 ‘잘될 거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우리 세대에는 못 누려요.” “정부도 무관심하고 지자체도 돈이 없다는 데 잘 되겠습니까?”

최근 분위기는 ‘북항 비관론’이 우세한 듯하다. 주변에선 기대만큼 실망도 큰지 ‘쯧쯧’ 혀를 찬다. 그저 그런 재개발처럼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인식 변화의 주원인은 엑스포 유치 실패다. 초대형 호재가 사라지면서 북항의 거품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북항은 입지 자체가 뛰어난 곳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도로, 철도 여건이 우수한 데다 배후 지역의 유동 인구도 상당하다. 실제 퇴근 직후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진역에서 열차를 탈 때마다 흠칫한다. 중앙동 등 원도심 업무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젊은 근로자들로 빽빽하다. 설 자리도 없어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앞으로 가덕신공항까지 연결되면 북항은 도로·철도·공항·유동 인구를 모두 갖춘 곳이 된다. 외부 호재 없이 자체 경쟁력만으로도 충분히 재개발 사업을 성공시킬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도 북항 재개발이 방황하는 것은 결국 지자체의 책임이 크다. 부산시는 북항 재개발 1단계 부지들을 부산항만공사(BPA)가 맡고 있다는 이유로,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다. 1단계 중심인 랜드마크 부지가 2년 이상 민간사업자를 찾지 못하는 데도,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최근 BPA가 용역을 통해 부지 개발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했지만, 사실 시가 먼저 나서 적합한 사업들을 찾아 이런저런 제안을 해야 했다. 북항이 부산의 백년대계, 미래라면서 재개발의 핵심인 랜드마크 개발을 모두 다른 기관에 맡긴 꼴이다.

더불어 시는 그간 건설 경기 불황에도 출구전략도 없이 재공모를 촉구했다. 두 번째 공모 마감까지 민간사업자의 응찰을 자신했지만, 결국 시장을 오판했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사업 리스크만 커졌다.

북항 친수공원의 상시 콘텐츠 부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항을 부산항의 유구한 역사, 문화, 관광을 접목한 ‘핫플레이스’로 조성하기 위해 콘텐츠 전담 기구를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관리권을 가진 지자체는 묵묵부답이었던 반면 해양수산부는 강도형 장관이 직접 전담 기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선진 항만 재개발지 모두 항만 당국이 아닌 지자체, 정부가 재개발 사업을 주도한다. 더는 항만 기능이 없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기관이 전문가 그룹과 협업해 새 도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역 특성을 고려해 필요한 관광·주거·산업 기능을 입히고, 행정·세제 지원책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식이다. 반면 북항은 항만 당국이 부두 이동부터 도시 재개발까지 모두 맡는 ‘기형적 구조’다.

구조가 어찌 됐든 시는 하루빨리 북항에 대한 ‘주인 의식’을 찾아야 한다. 최근 지역 언론, 상공계를 중심으로 북항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인다. 포럼을 만들어 활성화 대책을 논의하고, 랜드마크 부지 개발에 대한 굵직한 대안을 제시한다. 복합리조트를 비롯해 해변 야구장, HMM 사옥 등이 그 대안이다. 북항에 ‘뭐라도 해 보자’는 파이팅 분위기가 감돈다.

이에 시도 자체 예산을 들여서라도 제기된 랜드마크 개발안을 면밀히 검토해 가능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고 행정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야구장, K팝 공연장으로 쓸 수 있는 아레나 시설 건립에 대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충당합니까”라며 취재진에 반문했다. 얼마나 돈이 드는지, 사업성은 어느 정도인지, 조달 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등 근거도 없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시 담당자는 복합리조트에 대한 시의 입장을 묻자 “좋지요”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부산의 미래’ 북항이 랜드마크 시설 하나 없는 그저 그런 곳으로 전락할 위기다. 지금이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 미래를 제대로 그려야 한다. 전문가 그룹과 좋은 콘텐츠, 개발 아이디어를 선별·제시해 정부와 항만 당국을 귀찮게 해야 한다. 북항에 대한 ‘네이밍’ 사업도 진행해 부산의 새 도시 브랜드를 홍보하자. 이것이 부산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시의 막중한 ‘임무’다.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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