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명절 밥상머리 가짜뉴스 안될 말
권상국 정치부 차장
한자리 모여 앉으면 정치 이야기 하기 마련
여야 할것 없이 최근 의혹몰이 열올리는 이유
의대 증원서 보선까지 건강한 논의 오가야
계엄령 선동 등 가짜뉴스 없는 한가위 되길
끔찍했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지만 열대야는 여전하다. 늦더위에 잠을 설치는 사이 어느새 한가위가 코앞이다. 아직 차례상을 포기 못 하시는 시어머니와 심기 불편한 며느리 사이에서 죄인이 된 종손은 연휴 내내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자주 대화를 나누게 하고 시의적절한 화제로 그때그때 집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건 종손의 오랜 생존비책이다.
여야 정치권도 직장인 못지않게 명절 연휴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명절 연휴 밥상머리는 정치권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앉은 일가는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다 결국에는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국민 모두가 정치 고관여층은 아니다. 일가 중 한 사람 떠들기 시작하면 다들 자연스레 그 논리를 따라간다. 이달 초부터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가위 연휴 동안 상대를 공격할 꼬투리를 잡기 위해 각종 의혹으로 제기하며 열을 올리는 이유다.
4일 간의 연휴가 지난 후에도 정치권의 레이더는 맹렬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10월 16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과연 밥상머리 표심은 어땠는지 검증이 필요해질 테니 말이다. 이번 한가위 밥상머리를 장악하는 건 어떤 이슈가 될까.
2024년 한가위 최고의 이슈는 의대 증원이 아닐까 전망해 본다. ‘대입’과 ‘정치’라는 가장 감칠맛 나는 재료끼리 버무려놨다. 흥행이 안 될 리 만무하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 등 의료 붕괴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의료계 달래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라는 의사들의 요구를 정부는 받아들일 것인가 등이 입방아에 오를 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여야의정 모두 신속히 협의체를 출범시키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장 내년도 정원부터 원점에 논의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연일 ‘노(NO)’를 외친다.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수시 절차가 나흘이나 지난 시점이고,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주장한다. 그간의 민심을 역행한 의협 행보와 대통령실의 박스권 지지율을 보면 강경일변도의 발언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의대 증원 이슈와 더불어 금투세 이슈도 뜨겁다. 뜨거운 감자 수준을 넘어 건드리기 난감한 불덩이가 된 상태다. 전국에 개미 투자자만 1400만 명이라 하니 이 역시 연휴 내내 어딜 가든 화제의 중심에 있을 터다. 금융투자소득세라는 생소한 세금이 본격 도입되면 여당의 말대로 개미 투자자들이 절망으로 추락하게 될지, 야당의 말대로 도탄에 빠진 국민을 구하기 위해 부자의 곳간을 열게 될지 따져볼 일이다.
멀리 보지 않아도 당장 부산에서는 금정구청장 보궐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김재윤 전 구청장의 별세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여야가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후보 면면이 모두 오래 보아온 우리 동네 정치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뜻밖에도 전략공천이 아닌 경선을 택했다. 11일 부산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부산시의회 윤일현 의원과 금정구의회 최봉환 의원 간의 2인 경선을 발표했다. 금정구는 정미영 전 구청장 이전까지 선출직을 사실상 국힘 계열에서 독식해 온 ‘보수의 아성’이다. 그러나 14일까지 경선을 진행해 후보를 가리기로 하면서 동네 선거 표심 다지기에 가장 적기라는 명절 연휴 유세 일정이 빠듯해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한 달 넘게 레이스를 펼친 금정구의회 출신 이재용, 조준영 구의원이 간택받지 못한 것이 변수다. 지난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졌던 전 지역위원장인 김경지 변호사가 전략공천 받았다. 내부적인 파열음이 적지 않다.
여기에 ‘지민비조’로 총선 당시 민주당과 합을 맞췄던 조국혁신당까지 금정구를 양보하라는 입장을 연일 밝히는 중이다. 야권 내에서도 이 구도로는 단일대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우려까지 흘러나온다. 과연 부산 야권의 후보 단일화는 가능할까.
반면, 이번 명절 연휴에는 밥상머리에 제발 올리지 말아야 할 ‘불량 이슈’도 있다. 바로 가짜뉴스와 괴담이다. 한바탕 난리가 났던 민주당의 계엄령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쟁에 찌들다 못해 갈 때까지 간 정치권의 망동이다. 정부가 국회 해산을 노리고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엄연한 공당의 대표부터 최고위원까지 근거도 없이 떠들었다. 정확한 근거를 대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박근혜 정부 시절 의혹을 되살리더니 결국엔 ‘예방 차원의 발언’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문자 그대로 선동이다. 조상이 먹고 자식이 먹을 음식이라 예로부터 가격 흥정도 안 하고 빚어올리는 게 명절 밥상이다. 2024년 한가위 밥상머리에는 건강하고 상식적인 논의만 오가야 한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