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9월의 미술축제
오금아 콘텐츠관리팀 선임기자
베니스에서 ‘병행전시’ 잠재력 확인
부산·광주비엔날레와 ‘키아프리즈’
지역 미술 현장과 동반성장하기를
최근 급하게 일정을 잡아 진주에 다녀왔다. 종료를 앞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진주가 낳은 세계적 예술가 고 이성자 화백. 1951년 프랑스로 간 그는 해방 이후 전업 작가로 유럽에 정착한 첫 세대이다. 일행은 북극과 알래스카를 지나는 비행 항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 앞에서 감탄했다. 그날 부산으로 돌아오다 창원에 들렀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도 이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을 실감형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전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에게 인기였다. 경남을 대표하는 추상회화 거장과 젊은 작가를 소개한 ‘추상과 관객’ 전에서 진주에서 보지 못한 다른 작품까지 감상했다.
1일 투어 ‘이성자데이’의 시작은 베니스였다. ‘물의 도시를 뒤덮는 미술의 물결을 직접 느껴보자.’ 올봄 베니스비엔날레에 도전한 이유다. 1895년 시작한 세계적 예술 축제가 올해로 60회를 맞았다는 점에서 관심이 더 갔다. 현지에 도착하니 베니스 전체가 비엔날레를 홍보하는 느낌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규모는 엄청났다. 332명(팀)이 참여한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를 돌아다니느라 매일이 전쟁 같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작품 수에 압도된 탓인지 비엔날레 자체에서는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대신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병행전시가 더 흥미로웠다. 주 전시장 지역에서 떨어진 아르테노바에서 열린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도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의 하나였다.
올해는 베니스에서 K아트를 알리는 전시가 많이 열렸다. 부산 작가와 부산에서 전시를 봤던 작가의 작품을 만났을 때는 반가웠다. 구글 지도를 들고 어렵게 찾아간 유영국이나 이배 작가 전시는 감동이 컸다. 전시장 자체도 볼거리였다. 현지에서 만난 유학생에게 한국 전위미술가 이승택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 2인전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시내 건물을 빌려 운영되는 짐바브웨 국가관에 우연히 들어가 한글이 쓰인 지압 신발을 이용한 작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중국 추상화가 주테춘, 알렉스 카츠 같은 작가의 미술관급 전시를 무료로 감상하는 기회도 얻었다. 무라노 유리공예를 소개하는 특별전이나 지역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장까지. 이게 베니스비엔날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일 미술여행주간이 시작됐다. 올 4월 문체부는 부산, 서울, 광주 등 지자체와 손잡고 ‘대한민국 미술축제’ 성공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산비엔날레를 시작으로 4일 개막하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7일부터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미술행사를 연계해서 관람객 참여 폭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 영향인지 현장에서는 개별로 행사를 알릴 때보다 홍보 효과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은 부산비엔날레 전시해설은 매회 정원을 채울 정도로 인기란다. 주요 미술관 할인 혜택까지 제공하는 부산·광주 비엔날레 통합권과 철도승차권을 연계한 특별 관광상품 판매 등 관계기관의 협력도 눈에 띈다.
“서울이 정말 들썩들썩해요.” 지인의 이야기는 쏟아지는 보도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확인된다. 3회차에 접어든 ‘키아프리즈’를 찾아올 국내외 미술 관계자를 겨냥해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 소식이 이어진다. 세계적 거장, K아트를 이끄는 중견 작가, 새롭게 주목받는 신진작가 등을 만나는 기회가 서울 곳곳에 펼쳐진다.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순항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예전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아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의 열기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점은 아쉽다. 우리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대한민국 미술축제라는 배에 같이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지역 문화행정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고 미술축제가 서울만의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우선 부산비엔날레가 준비한 ‘현대미술의 배’에 승선해 보자. 원도심에 있는 부산근현대역사관, 초량재, 한성1918은 입장료도 안 받는다. 인터넷 검색창에 ‘부산 전시’만 입력해도 다양한 전시 정보가 쏟아진다. 그중 가까이 있는 전시장부터 방문해도 된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전시를 찾아가면 더 좋다. 부산 갤러리들도 작가와의 만남, 오픈 파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 중이다. 지난주 해운대 한 갤러리의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대부분 초면이라 한동안 어색함이 흘렀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점점 좋아졌다. 축제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 대신 지인들과 부산비엔날레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내친김에 수첩에 연말까지 가볼 곳을 적어본다. 광주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대구 간송미술관, 대전 이응노미술관과 헤레디움…. 올해는 각지로 예술 발품을 좀 많이 팔 운세인가 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