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기차 시장 ‘빙하기’ 오나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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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부장

한때 꿈의 에너지원…연간 30% 성장
‘전기차 캐즘’·대형 화재로 시장 급냉
2026년 이후 전고체 배터리 나올 듯
전기차 수요 당분간 회복 어려울 전망

“앞으로 전기차 시대가 올 거다. 내연기관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자동차 분야 출입처로 처음 왔을때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당시만 해도 가솔린차와 디젤차들이 주를 이루던 때였다. ‘설마 그렇게 될까’ 했다. 전기차 충전을 어떻게 할 건지, 요금을 어떻게 매길 건지 등 드는 의문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후 2013년 르노삼성(현 르노코리아)의 국내 첫 양산 전기차 ‘SM3 Z.E’가 나왔지만 한 번 충전에 135km 주행하는 정도여서 실용성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미국의 테슬라가 완충 시 주행거리를 500km 안팎으로 늘린 신차를 출시하고 이어 급속충전기까지 등장하면서 전기차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나섰고, 주행거리가 테슬라와 맞먹는 모델들도 잇따라 선보였다. 2020년께는 전기차 시장이 향후 대세로 갈 거라며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2030년 전후로 모든 내연기관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최근 몇년새 주춤했다. 초창기에는 얼리어답터들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매년 30%씩 판매량이 늘어났지만 초기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생겨났다. 여기에 최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벤츠 전기차 화재는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줬다.

차 한 대 화재로 끝나지 않고 한 층 전체에 주차된 140여 대가 전소됐고, 아파트는 단전·단수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해당 전기차 소유주 입장에선 기름값 좀 아끼려다가 졸지에 대형 화재의 원인제공자가 됐고,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소송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화재이후 사회 전반에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형성되면서 아파트 단지들에선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출입금지, 지하 충전 금지, 지하 충전시설 지상 이전 등의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대중교통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전기택시와 전기버스도 기피하는 분위기다. 한 40대 주부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다가 전기차가 오면 그냥 보낸다. 왠지 타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포르투갈에서도 테슬라 추정 화재로 주차빌딩에 있던 차량 200여 대가 불 탔다.

전기차 화재는 대부분 배터리의 불안정한 액체상태에서 기인한다. 배터리에 열이 나면 부풀어오르면서 화재가 나고 옆 배터리셀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열폭주 현상이다. 전기차는 불이 나면 소방관들도 일반 화재처럼 진압하지 않고 있다. 6~7시간 차량이 전소되도록 내버려두거나 차량을 수조로 채워서 진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 캐즘에서 이제 ‘전기차 빙하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고차 시장에선 이번 인천 화재 이후 “불안해서 못타겠다”며 2주 동안 기존 대비 거의 3배 이상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전기차 구매를 계약했던 이들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개발에 올인하다시피한 국산 완성차 업체들과 수입차 업체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눈치다. 하반기 전기차 출시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데 시장 상황은 ‘전면 보류’다. 일부 업체들은 ‘현상유지’ 차종이었던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다시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업체들도 내연기관의 전기차 완전 전환 시점을 수년씩 늦추고 있다. 하이브리드 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이 부문 판매차종이 많은 일본 토요타, 렉서스와 혼다 차량 판매는 확대되고 있다.

한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에 강한 재료를 배터리에 사용하거나 불이 나더라도 옆 셀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적용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재에 강해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나서 이르면 2026년께 관련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2~3년간은 전기차 화재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전기차 판매를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와 현대차·기아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설명자료를 내고 고객 대상으로 안전점검까지 실시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회와 학계, 완성차 제조업체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 화재 방지에 대한 세미나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를 막을 ‘뾰족한 수’는 현재로선 없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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