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마음에 들다 / 김선태(1960~ )
너를 향한 마음이 내게 있어서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부네
나는 네가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집
대문도 담장도 없이 드나들어도 좋은 집
마음에 든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미는 일
온전히 스미도록 마음의 안방을 내어주는 일
하지만 너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
나는 촛불을 켜고 밤늦도록 기다리는 사람
그렇게 기약 없는 사랑일지라도
그렇게 공허한 행복일지라도
너를 향한 마음이 내게 있어서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부네
-시집 〈그늘의 깊이〉(2014) 중에서
사랑은 ‘스며드는 것’이다. 스밈은 두 대상이 각자의 성질을 버리고 하나의 새로운 물질로 변화하는 것, 물리적인 조각 맞추기가 아니라 화학적인 용해 작용을 통해 새로운 물질로 탄생하는 것. 사랑은 음이온과 양이온이 인력에 의해 하나의 물질로 융합되듯 스며 천지의 법칙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마음의 안방을 내어주는 집’이 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촛불을 켜고 밤늦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너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집과 사람은 사랑의 사도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대문도 담장도’ 다 열어 놓은 사랑의 집은 얼마나 그윽하고 싱그러울까! 사랑의 사도만이 언제 ‘드나들어도 좋을’ 집을 마음에 품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