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대한민국 제2 도시의 소멸이라니!
논설위원
전국 광역시 최초 소멸위험지역 진입
2050년이면 부산 시민 절반이 노인
부산의 전략은 글로벌 금융 허브도시
나줘주기식 균형발전 정책 효과 없어
비수도권 거점 대도시 육성이 해법
임계점 넘는 정책·투자 집중이 관건
엄청난 일이지만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은 이미 정해진 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의 소멸위험지역 진입 이야기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지방소멸 2024: 광역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위험’ 보고서를 통해 부산이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들어섰다고 발표했다. 서울을 제외한 광역시 전체 45개 구·군 중 21곳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는데 그중 절반 이상인 11곳이 부산의 자치구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소멸위험지수는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에서 만든 개념이다. 핵심 지표는 해당 지역에 출산 적령기(20~39세) 여성이 얼마나 사느냐다. 그 인구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로 나눈 값이 소멸위험지수다.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진입단계, 0.2 미만이면 소멸고위험단계로 구분된다.
부산의 인구는 2024년 3월 기준 329만 명으로 65세 이상이 23%인데 비해 20~39세 여성 인구는 11.3%에 그쳐 소멸위험지수 0.490을 기록했다. 젊은 여성이 노인 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제2 도시 부산의 소멸이라니!’ 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서두에 언급했듯이 ‘소멸위험도시 부산’은 예고된 시나리오다. 부산은 2021년 9월 전국 대도시 중 처음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50년이면 부산 인구는 250만 명으로 쪼그라들고 평균 나이가 60세를 넘어 시민의 절반이 노인이 된다는 게 통계청의 인구추계다.
청년이 부산을 떠나는 주된 이유는 알다시피 일자리다. 지역 소멸의 핵심 지표인 젊은 여성의 이탈이 더 두드러지는 것은 일자리 구조에서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젊은 여성 일자리는 블루칼라도 화이트칼라도 아닌 핑크칼라가 주류다. 이른바 돌봄 직군이거나 파트 타임·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청년이 필요로 하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될 일인데 그 해법을 찾지 못해 소멸의 길목에 접어든 게 지금 부산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경로의존성을 벗어나기 위해 부산이 선택한 방향이 글로벌 허브도시다. 물류와 금융을 축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지역 산업을 혁신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금융기회발전특구 지정은 이를 위한 구체적 발걸음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실질적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동안의 정부 균형발전 정책은 거창한 레토릭에 그쳤거나 나눠 먹기식 복지정책 성격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의 금융중심지와 블록체인특구 지정이 산업생태계 형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질적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과감한 정책 집중이 필요한데 변죽만 울린다. 이 과정에는 수도권 중심의 기득권적 시각도 작동한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 누더기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기회발전특구라고 다를까.
마침 부산의 소멸위험지역 진입 소식이 알려지기 얼마 전 한국은행이 부산에서 지역경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로막는 초저출생과 이에 따른 성장 잠재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는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창룡 총재의 의지가 반영된 행사다. 한국 최고의 경제 싱크탱크가 제시하는 해법은 비수도권 대도시 한두 곳에 투자를 집중해 서울에 비견되는 거점 대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수도권 대다수 지역이 비슷하게 쇠퇴하는 것보다 거점 대도시 중심의 균형발전으로 얻는 집적경제의 이득이 주변 지역으로 고루 파급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분석 결과도 덧붙인다.
한국은행이 심포지엄의 첫 개최지로 부산을 정한 것도 이런 기대감의 반영일 것이다. 부산이 기회발전특구 전략의 핵심으로 금융을 내세운 것도 산업생태계 혁신에 미칠 파급력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은 정책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산은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에 맞춰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금융 특화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새롭게 형성되는 금융 생태계인 만큼 정부의 규제 이슈가 시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부산이 씨를 뿌리고 있는 만큼 정부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전폭적 정책 지원을 통해 산업생태계가 꽃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제2 도시가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데 대한민국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더 이상 균형발전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선택과 집중으로 소멸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지역의 성장 잠재력이 폭발할 수도 있다. 정부의 정책 의지에 달렸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