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것
영화평론가
감정을 색깔로 표시할 수 있다면 오늘의 감정은 무슨 색깔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온통 주황색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기쁨이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휘둘리기 바쁘다. 내 감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감정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그중 가장 속수무책인 감정은 바로 주황색을 나타내는 ‘불안’이다.
13살이 된 ‘라일리’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한 친구들이 있고, 좋아하는 하키를 즐길 줄 아는 매일이 행복한 소녀이다. 늘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을 보낼 줄 알았던 라일리에게 갑작스레 변화가 찾아온다. 라일리 머릿속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라는 새 감정들이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감정은 상냥했던 라일리가 느닷없이 화를 내게 하거나, 고민을 나누던 친구들을 의심하게 하거나, 인기 많은 친구를 부러워하는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늘어난 감정을 수용하기 위해 감정 본부가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가면서 작은 자극에도 감정이 대폭 확대되어 반응하게 되는 이상증세가 나타난다. 그야말로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는 상태,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개봉 영화 '인사이드 아웃2'
13살 라일리 이야기 통해
마음의 성숙 과정 보여줘
고대하던 하키 캠프 첫날, 단짝 친구들과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는 걸 알게 된 라일리는 불안에 지배당한다. 당장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슬퍼하고 분노하고 초조해하다가 결국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오답을 내놓고 이를 실행하려 애쓴다. 불안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주장하며 기존의 감정들과 충돌한다. 이제 라일리에게 남은 건 점점 커지는 불안밖에 없다.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분주했던 기존 감정들인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이는 밝고 상냥한 라일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나 역부족이다.
‘인사이드 아웃2’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세심히 변화하고 서로 충돌하는 감정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공감할 만한 요소다. 누구나 예상 불가능한 미래가 불안하고, 불안한 만큼 나를 더 채찍질한다. 나의 부족한 모습에 조급해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열등감과 패배감에 휩싸여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13살 라일리만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지나왔던 과거이며, 현재도 느끼는 감정들이다. 불안이 나의 삶을 갉아먹는 걸 알지만, 폭주하는 불안을 끌어안는데 역부족이었음을 말이다. 하지만 불안이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안다. 즉 불안은 라일리를 힘들게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자아’의 필수 요소임을 영화는 말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살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행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얻기 위해 내 안의 감정들이 서로 부딪히고 다치고 아프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깨닫는 건 행복이 아니라 어느새 단단해진 마음(감정)이다. 물론 그 감정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날뛰던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이제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음을 불현듯 느낀다.
사춘기라는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지나 능숙히 감정을 숨길 줄 아는 어른이 되지만, 이제 기쁨만을 찾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들고, 그 자리만큼 불안에 내어주는 일이니까 말이다. 애니메이션은 사춘기를 겪던 ‘나’를 떠올리는 동시에 감정을 잃어버린 ‘나’를 만나게 하는데, 그건 어쩐지 슬프면서도 따듯한 기억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로 9년 만에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2’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