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라바 낚시 체험] 평생에 두 번 만나기 힘든 제주 마라도 영물 90.5cm 참돔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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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시즌이 도래한 제주 참돔 지깅(타이라바)에서 대물 참돔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부산광역시낚시협회 김선관 회장과 함께한 탐사 출조. 손님 고기 쏨뱅이와 대물 광어도 쉽게 만나는 제주 참돔 지깅 낚시.

[마라도 영물 참돔과 만나다]

김선관 부산광역시낚시협회 회장이 철수 직전에 올린 70cm급 7짜 참돔. 체색이 영롱하다. 김선관 부산광역시낚시협회 회장이 철수 직전에 올린 70cm급 7짜 참돔. 체색이 영롱하다.

"이 기자 이걸로 한번 써보세요. 오징어 먹물 꼴뚜기입니다." 김선관 부산광역시낚시협회 회장이 채비 하나를 주었다.

이날 채비 손실이 심했다. 처음엔 바닥 걸림으로 목줄과 원줄 합사가 50m 이상 끊어졌다. 겨우 목줄을 다시 묶어 채비를 수습해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덜컥 입질을 받았는데 하도 오랜만의 입질이라서 감을 놓쳤던 모양이다. 고기를 놓칠세라 힘차게 챔질했더니 100m 이상의 원줄 합사가 뚝 끊어졌다. 망연자실했다.

철수로 예정된 오후 4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제주 마라도 앞바다에 두둥실 뜬 압둘라호 선상에서 다들 참돔 대잔치를 즐기고 있었지만, 이때까지 나의 축제는 아니었다. 어떤 이는 두 자릿수도 훌쩍 넘겼는데 겨우 서너 마리만 낚은 상태다.

미러볼 형태 타이라바를 물고 나온 7짜 참돔. 미러볼 형태 타이라바를 물고 나온 7짜 참돔.

‘인제 그만 둘까. 철수도 다 돼 가는데.’ 원줄도 100m 이상 날아갔으니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다.

“제 릴에 감긴 합사를 풀어 쓰세요.” 김 회장이 망연자실한 채 넋을 잃은 기자를 보더니 가방 속에 있던 스페어 릴을 건넸다. 다른 사람의 릴에 감긴 합사를 풀어 쓸 지경이 됐다니... 일단 1시간 정도 남은 상태라 염치 불고하고 김 회장의 합사를 전동릴로 100m 옮겨 감았다. 줄을 다 감고 나니 김 회장이 타이라바 채비를 건넸다. 먹물을 뒤집어쓴 꼴뚜기 모양의 루어였다.

물때가 바뀌었는지 조류가 조금씩 빨라졌다. 미러볼 형태로 녹색펄이 가미된 야마시타 사의 금색 타이노헤드 150g을 달고 먹물꼴뚜기 루어를 바닥까지 늘어뜨렸다. 100m 남짓의 수심인데 150m까지 줄이 풀려나갔다. 8m 정도를 더 풀었다. 헤드가 바닥에 슬쩍 얹히는 느낌이 들었다. 릴을 두어 바퀴 살짝 감았다. 두 바퀴를 감고, 세 바퀴를 감았을 무렵 투두둑 예신이 왔다. 네 바퀴, 다섯 바퀴에 바로 초릿대가 활처럼 휘더니 순식간에 원줄이 좌르르 풀렸다.

“이 자리는 대물이 나오는 자리입니다. 원줄은 반드시 30m 이상 남겨 놓아야 합니다.” 압둘라호 장진성 선장의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전동릴 화면을 보니 220m 이상 줄이 풀려나간 상태다. 릴의 권사량을 맞추느라 밑줄로 감은 흰색 4호 합사가 드러났다. 그마저 계속 풀려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여기서 더 풀리면 끝이 아닌가. 머릿속이 밑줄처럼 하얘졌다.

청정 제주 마라도 앞바다에서 낚은 9짜 참돔(왼쪽)과 7짜 참돔. 길이뿐만 아니라 체고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청정 제주 마라도 앞바다에서 낚은 9짜 참돔(왼쪽)과 7짜 참돔. 길이뿐만 아니라 체고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영물 참돔이라고?>


여기까지 읽은 분은 기자가 마침내 대물 참돔을 낚은 것을 잘 아실 것이다. 보통 8짜부터 '빠가'라고 하고, 9짜도 역시 빠가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9짜 참돔을 '영물 참돔'이라 불렀다. 또 9짜를 낚더라도 다시 놓아주는(캣치&릴리즈) 식이 대부분이란다. 이날 잡은 9짜는 아쉽게도 운명을 다했다. 선장의 말로는 다시 놓아주어도 살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데 당일 선장을 돕기도 하고 낚시도 즐기러 온 장 선장의 동생 희동 씨가 철수하는 상황에 기자에게 알 듯 모를 듯한 한 마디를 했다. "영물은 제가 손 대지 않습니다. 직접 시메(피 빼기) 하세요"

당일 조과의 일부. 연박하는 낚시인들은 물간에 고기를 살렸다. 당일 조과의 일부. 연박하는 낚시인들은 물간에 고기를 살렸다.

갑판에 놓인 수십 마리의 물고기 중에 왜 유독 내가 잡은 9짜만 시메를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 말을 고기를 물간에 넣을 때부터 서너 번 들은 것 같다.

이유인 즉, 제주에서는 9짜 참돔을 영물로 여기고, 그렇기에 고기를 죽여야 하는 '시메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메는 아가미를 잘라 물고기의 피를 빼서 신선하게 보관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피를 빼 얼음에 재워야 신선도가 유지돼 육지에 가져가서도 횟감으로 쓸 수 있다.

기자의 손에 칼이 주어졌다. 500원 동전 만한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아바타 1편에서 봤던 것처럼 짧은 명복을 빌었다. 그렇게 9짜 참돔은 낚은 조사에 의해 시메됐다.


사계항에서 본 일출. 사계항에서 본 일출.
출항하며 본 사계항과 삼방산. 출항하며 본 사계항과 삼방산.

여기가 마라도 앞바다입니다.

사계항 해녀상. 사계항 해녀상.

전날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한 갑오징어 탐사는 만족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탄 배에서 멀미한 것도 큰 이유다. 심히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저녁 식사에 청정 제주바다산 갑오징어 숙회라는 멋진 안주가 있었지만, 음주는 절제했다. 참돔 타이라바 낚시에 그만큼 공을 들였다. 참돔 지깅 낚시는 흔히 타이라바라고 하는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를 주로 쓴다. 스포츠 용어가 그렇듯 원산지를 존중하는 의도다. 굳이 참돔 지깅낚시라 하더라도 '지깅'이란 외래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

타이라바는 타이(도미의 일본어 발음)+라바(러버지깅의 줄임말로 즉 고무 재질의 리본과 바늘을 결합한 형태)의 일본 낚시 용어다. 어부들이 쓰던 방식을 스포츠 낚시에 적용했고, 한국으로 유입됐다.

타이라바는 헤드(구멍 봉돌)을 먼저 원줄에 끼우고, 바늘이 묶인 러버를 다는 비교적 간단한 채비다. 찌와 수중찌 멈춤고무 등등을 다는 구멍찌 낚시에 비하면 간결하다. 잡히는 어종도 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참돔, 쏨뱅이, 열기, 자바라, 광어뿐만 아니라 삼치, 방어, 부시리, 농어 등도 심심찮게 걸려드는 만능 채비다.

이맘때 제주에서는 월동하는 참돔이 마라도 앞바다로 몰려든다고 한다. 특히 마라도 인근은 물밑 지형이 잘 발달해 참돔의 먹잇감이 많기 때문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항으로 갔다. 참돔 낚시 역시 갑오징어처럼 낮에 하는 낚시라 해 뜰 무렵에 나가면 된다. 출항 시간은 8시로 정했다.

제주도 이외의 곳에서 이루어지는 타이라바 낚시엔 갯지렁이가 필수 미끼로 쓰인다. 루어의 본연은 아니라지만 '타이렁이'가 기본처럼 쓰이고 있다. 타이라바 채비의 바늘에 갯지렁이를 주렁주렁 달아 하는 낚시다.

육지에서 온 우리 일행도 기본처럼 인근 낚시 가게에서 갯지렁이를 몇 통 샀다. 선장이 오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낚시인들이 출몰했다. 멋진 픽업트럭을 타고 온 외국인도 있었다. 제주공항에서 낚시인 서너 명을 태우고 온 선장이 배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 출발이다. 제주 배낚시는 육지 손님이 주로 많기에 공항 픽업 서비스를 하는 선상낚시배가 많다.


사계항을 출항해 도착한 첫 포인트는 형제섬이 근처였다. 이날 제주 바다는 장판처럼 잔잔했다. 사계항을 출항해 도착한 첫 포인트는 형제섬이 근처였다. 이날 제주 바다는 장판처럼 잔잔했다.

용왕님이 도우신 게 맞수다

압둘라호는 제주 전역에서 주로 루어낚시 기법의 손님을 받는 배다. 몇 년 전에 방어 지깅낚시를 취재한 인연이 있고, 지난해엔 개인적으로 한치 루어낚시를 체험한 배여서 친숙하다. 2023년 새해 첫 출항이라고 했다. 한 일주일 만에 출항하는데, 굳이 쉬려고 해서가 아니라 날씨가 궂어서 못 나갔다고 했다. 오늘은 참 날씨가 좋다고 장 선장이 운을 뗐다. 배가 사계항을 출항하자마자 자주 타는 승객 중 한 분이 막걸리를 뱃고물과 이물에 골고루 뿌렸다. 기자가 찜해 둔 자리에도 한 모금 막걸리를 뿌리고 지나갔다.

사계항에서 멋진 일출을 보고 출항했는데, 바다로 나올수록 풍경이 기가 막혔다. 형제섬과 삼방산이 뚜렷한 배경으로 눈을 즐겁게 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무작정 영상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첫 포인트에서 연이어 올라온 제주 바다 붉은쏨뱅이. 첫 포인트에서 연이어 올라온 제주 바다 붉은쏨뱅이.

첫 포인트는 사계항 앞바다. 바다는 예상보다 너무 잔잔했다. 제주 바다가 이런 적은 일 년에 며칠 안 된다며 장 선장은 용왕님이 돕고 있다고 말했다. 속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조금 더 달려도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남상출 월간 바다낚시&씨 루어 편집장은 숙소에서 혼자 500ml 맥주 한 캔을 더 먹었다고 했다. 쩝.

수심 100m 정도의 암반 지대라고 한다. 바닥에 어군도 찍힌다고 했다. 배 맨 앞쪽에 자리 잡은 루어꾼 한 명이 입질을 받아냈다. 붉은 체형의 아담한 참돔이 올라왔다. 옆자리에 있던 기자도 입질을 받았다. 참돔을 기대했는데 무게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20cm가 살짝 넘는 쏨뱅이였다. 체형이 이쁜 건 쏨뱅이도 마찬가지였다.

드문드문 고기가 나오는데, 쏨뱅이가 더 많았다. 참돔은 꼬리에 색이 다른 각자의 케이블 타이를 묶어 물간으로 직행하지만, 쏨뱅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두레박에 우선 모았더니 어느새 넘칠 듯이 고기가 모인다.

생각보다 참돔이 많이 나오지 않자 장 선장이 채비를 걷으라고 했다. 이동이다. 이번엔 마라도 앞바다다. 마라도는 광고 때문에 짜장면이 먼저 떠오르지만, 나중에 일어난 일로 이날 이후 마라도는 참돔이 내 기억의 우선순위가 된다.


두 번째 포인트인 마라도 앞바다로 이동하는데 서광이 비친다. 두 번째 포인트인 마라도 앞바다로 이동하는데 서광이 비친다.

새해 첫 줄조에 모두 흡족한 조과

'수심은 90m부터 시작한다' '릴의 드랙을 풀어 놓아라' '원줄이 최소 30m 이상 여유는 있어야 한다' '바닥에서 다섯 바퀴(약 3m) 이상 올라오면 다시 채비를 내려라' '고기는 바닥에 있다' 장 선장이 쉴 새 없이 요령을 알려주었다.

낚시 경험이 많은 김 회장이 "고기를 잡는 사람이 어떤 색깔의 채비를 쓰는지 보고 벤치마킹하세요"라고 말했다. 맨 앞쪽에 선 루어꾼이 포인트를 이동해서도 단연 앞섰다. 나중에 들으니 저격핸들이라는 수제 릴 핸들을 만드는 회사의 김우현 대표란다. 1년에 타이라바만 150일 이상 다니는 마니아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른바 타이렁이 즉 지렁이도 달지 않았다. 오직 인공 미끼만으로 잘도 참돔을 걸어냈다. 한 번은 김 대표와 그 옆에 선 김 회장, 기자 순으로 연달아 입질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마라도 앞바다에서 부지런히 타이라바를 물고 늘어지는 참돔 탓에 정신이 없었다. 김 대표는 옆에 분들이 타이렁이를 해서 입질을 받는 것을 보고 치렁치렁 긴 모양의 타이라바를 썼다고 나중에 이야기했다. 낚시는 이래저래 눈치도 빨라야 하고 채비도 자주 바꿔가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모양이다.


타이라바 채비에 지렁이를 가미한 '타이렁이'. 지렁이를 통째 꿰기에 채비가 물속에서 치렁치렁 늘어지는 효과가 있다. 타이라바 채비에 지렁이를 가미한 '타이렁이'. 지렁이를 통째 꿰기에 채비가 물속에서 치렁치렁 늘어지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급하면 둘러 가야 한다는데, 그만 원줄이 끊어지는 바닥 걸림이 발생했다. 채비를 재정비하는 5~10분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혼자 채비를 묶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히트!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배 뒤쪽에 자리 잡은 미국인 앤드루 씨도 드디어 참돔을 잡아냈다. 앤드루 씨는 제주 국제학교의 교사인데 낚시 마니아란다. 주로 빅게임(방어나 부시리 등 대형 물고기를 잡는 낚시)을 즐기는데 한국인 아내가 참돔회를 너무 좋아해 낚시를 나가라고 부추겼다는 것.

앤드루 씨는 빅게임 마니아답게 입질이 오면 힘으로 참돔을 끌어내다가 몇 마리 터뜨린 뒤였다. 다들 앤드루 씨가 입질을 받으면 "앤드루 슬로우 슬로우!"라고 외쳤고 앤드루 씨는 "알았어요"라고 능숙한 한국어로 응답했다.

대형 쏨뱅이 몇 마리로 살짝 저조하던 소풍낚시 서정춘 사장도 참돔을 몇 마리 잡아냈다. 압둘라 호에 탄 모든 이가 손맛과 참돔 어획을 즐겼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소풍낚시 서 사장이 대물 광어를 걸어냈다. 족히 80cm가 넘는 대광어였다. "이 시기엔 제주 사람은 참돔보다 맛으로는 대광어를 더 쳐준다"고 장 선장도 축하해 주었다.


출조 낚시인은 주로 수도권에서 항공편으로 온 이들이다. 배 뒷자라에 자리잡은 미국인 앤드루 씨도 보인다. 출조 낚시인은 주로 수도권에서 항공편으로 온 이들이다. 배 뒷자라에 자리잡은 미국인 앤드루 씨도 보인다.

마라도 영물 참돔을 만났다

포인트를 벗어나면 선장은 다시 배를 몰아 처음 그 자리에 갖다 댔다. 한눈에 봐도 조류가 제법 빨라졌다. 정신없이 채비를 담그고 감기를 반복하다가, 입질을 받았다. 어느새 입질이 뜸하다 싶으면 배는 마라도 한쪽으로 밀려나 있다.

이미 물간은 저마다의 꼬리표를 단 참돔으로 포화상태였다. 족히 60마리는 넘었다. 크기도 기본이 50cm가 넘었다. 남해에서는 30cm만 넘어도 씨알이 좋은 놈이라 한다고 남 편집장이 제주 참돔의 '빵'이 좋다고 했다. 압둘라호 정 선장도 "마라도 고기는 빵도 좋고 맛도 좋아요"라고 자랑했다. 참돔은 멸치나 작은 물고기도 먹는 어식성인데, 겨울에는 먹잇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라도 앞바다 암반 지대로 온다고 했다. 크고 작은 돌 틈에 사는 새우나 게, 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월동한다는 것. 그래서 다른 계절처럼 바닥에서 20~30m 띄우는 낚시는 하지 않고 오직 바닥만 공략한다고 했다.

이맘때 마라도 앞바다로 몰려든 방어잡이배. 마라도 해역은 바다 상황이 좋아 고급 어종이 몰린다. 이맘때 마라도 앞바다로 몰려든 방어잡이배. 마라도 해역은 바다 상황이 좋아 고급 어종이 몰린다.

머리가 주먹 만한 4짜 쏨뱅이. 머리가 주먹 만한 4짜 쏨뱅이.

참돔은 떨어지는 채비를 유심히 살폈다가 바닥에서 살짝 떠서 도망가는 형태를 보이면 따라와 문다고 했다. 타이라바의 고무 길이나 지렁이가 꽤 길므로 완전히 바늘을 삼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일정한 속도로 계속 감는다. 장 선장은 전동릴을 쓰는 사람은 최소 감기 속도로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했다. 손으로 돌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철수 시간이 다가오고 이미 10마리 이상 잡은 이들이 나온 마당에 채비가 터졌다고 30분 이상 남은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제법 센 입질을 받았으나 챔질하면서 원줄이 150m 이상 풀린 상태에서 끊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채비를 다시 했다.

주변 사람들이 김 회장이 운영하는 성광물산상사가 일제 야마시타 제품을 취급하는 걸 알고 야마시타사의 타이라바가 인기가 좋았는데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 아쉽다는 말을 했다. 야마시타 사의 채비는 원줄을 자르지 않고 추를 교환하는 특장점이 있었다. 기자의 경우 원줄이 통째로 끊어져 방법이 없었다.

채비를 갖추고 스풀을 풀었다. 160m 가까이 가서야 채비가 바닥에 닿았다. 닿는 순간부터 살짝 감아 들였고, 두세 바퀴에 약간의 예신이 있었다. 이어 강력한 입질과 함께 줄이 30m 이상 풀려나갔다. 여기저기 히트 장면을 촬영하던 남 편집장의 카메라가 옆자리에 고정됐다.


저격핸들 김우현 대표가 낚은 대형 쏨뱅이. 김 대표는 이날 참돔도 가장 많이 잡았지만, 붉은쏨뱅이도 많이 낚았다. 저격핸들 김우현 대표가 낚은 대형 쏨뱅이. 김 대표는 이날 참돔도 가장 많이 잡았지만, 붉은쏨뱅이도 많이 낚았다.

낚시라는 지병이 다시 도졌다

지루한 대결이 시작됐다. 전동릴은 힘겨워했다. 중간 단계의 감기 단위로 세팅했는데, 도무지 줄이 감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따금 2~3m씩 풀려나갔다. 바닥이 보이는 원줄을 보며 속이 타 들어가는 기자와 달리 옆에서 지켜보던 장 선장은 여유가 있었다. "오늘 비행기 못 탑니다. 다들 취소하시고 시간 연장하세요."라고 진담 같은 농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대물이라면 20분 이상 걸린다는 것.

지난해 연말에 80cm 살짝 넘는 '빠가' 참돔을 손님이 걸었는데 정확히 올리는 데 12분이 걸렸다고 했다. '빠가'는 낚시꾼 사이에서 80cm가 넘는 참돔을 일컫는 말이다. 대물이라는 뜻이다. 흔히 미터급 농어를 '따오기'라고 하고 8kg 넘어야 '대방어'라고 부르듯이 큰 참돔을 따로 예우하는 차원이겠다. 빠가 중에서도 90cm 넘는 참돔은 흔치 않아 장 선장은 특별히 '영물'로 불렀다.


2023년 새해 첫 출조지인 제주 마라도 앞바다에서 9짜 참돔을 낚은 이재희 기자. 월간 바다낚시 남상출 기자 제공. 2023년 새해 첫 출조지인 제주 마라도 앞바다에서 9짜 참돔을 낚은 이재희 기자. 월간 바다낚시 남상출 기자 제공.

원줄이 풀리고 감기기를 반복하며 입이 말라갔다. 원줄은 세토막으로 이었는데 100m 정도가 남자 마지막으로 김 회장의 릴에서 빌린 오색합사가 감기기 시작했다. 조금 안심이 됐다. 나중에 남 편집장은 "원줄 훼손이 더러 있기에 출조를 자주 하는 낚시인은 목줄뿐만 아니라 예비용 원줄도 챙긴다"고 말했다. 대물은 수면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먼 곳으로 도망간단다. 드디어 줄이 배에서 멀리 쭉 뻗더니 대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혹돔처럼 툭 튀어 오른 수컷 참돔이었다.

현장에서 실측하니 90.5cm다. 배 안의 모든 이들이 축하해 주었다. 동시에 입질을 받은 김 회장도 75cm의 준수한 참돔을 걸어냈다. 두 마리를 나란히 눕혔더니 크기 차이는 단연 나지만, 작은놈이 영롱한 체색으로 더 이뻤다.

어쩌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영물 마라도 참돔과의 만남. 여기저기서 축하받고 낚시 전문잡지 바다낚시&씨 루어 2월호의 표지사진으로 채택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초보꾼에게 잡힌 참돔에겐 불명예지만, 오래 남을 기억이다. 그날 이후 낚시 관련 인터넷 쇼핑 건수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는 꼭 비밀로 하고 싶다.



왼쪽부터 소풍낚시 서정춘 사장이 낚은 8짜 대광어, 기자가 잡은 9짜 참돔이 낚시전문잡지 바다낚시&씨루어에 표지사진으로 실렸다. 장희동 씨가 낚은 7짜 참돔. 왼쪽부터 소풍낚시 서정춘 사장이 낚은 8짜 대광어, 기자가 잡은 9짜 참돔이 낚시전문잡지 바다낚시&씨루어에 표지사진으로 실렸다. 장희동 씨가 낚은 7짜 참돔.

<90cm 마라도 영물 참돔 낚시 장비>

낚싯대: 해동 피나투라 아킬라스 러브지깅 C66RR

릴: 시마노 전동릴 포스마스터401

원줄: 힙사 1호

목줄: 쇼크리더 3호 2m

봉돌: 야마시타 타이노 헤드 미러볼 150g

채비: 먹물 뒤집어쓴 꼴뚜기 형태 야마시타 가무악 파동 베이트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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