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대신 붓 화가 이주홍을 만나다
"향파 선생님은 아동문학,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수필 등 문학의 전 분야에 걸쳐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또 연극 연출, 잡지 편집, 잡지 표지화, 만화, 회화 등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습니다."
류종렬(부산외국어대 교수) 이주홍문학재단 이사장은 "향파(1906~1987) 선생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고 했다. 19일 막을 올리는 '제11회 이주홍문학축전'의 핵심 행사로 '이주홍의 소년잡지 표지화전'을 내세운 이유다. 류 이사장은 "향파 선생이 그린 소년잡지 표지화를 한데 모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작가가 아닌 화가 이주홍 선생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제11회 이주홍문학축전, 소년잡지 표지 그림 전시회 열려
신소년·별나라 표지화 첫 공개… 다재다능 예술가 면모 확인
이번 표지화전에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부터 1935년 사이에 간행된 소년(아동)잡지 '신소년'과 '별나라'의 표지화 17점을 선보인다. 모두 향파가 그린 작품이다. 1920년대 후반기의 '신소년'과 '별나라'는 일제 강점기라는 엄혹한 현실 상황을 지배계급의 착취 구조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 계급주의적 성향의 소년잡지. '신소년'은 1923년 창간돼 1934년 5월까지 발간됐다. 향파가 1928년 5월 '배암새끼의 무도'란 글로 처음 문단에 이름을 올리고, 꾸준히 아동문학 작품을 발표했던 매체다. 향파는 나중에 이 잡지의 편집, 제본, 판매를 담당했다.
'신소년' 1929년 12월호 표지화 '농촌소년'을 보면 짧은 상·하의를 입은 소년이 손잡이가 긴 낫을 들고 있다. 이주홍이 그린 농촌소년의 모습은 노동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당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농사일을 해야 했던 일제 강점기 소년들의 현실을 나타낸다. 이전까지 '신소년' 표지에서는 볼 수 없던 그림이었다. 향파가 합류하면서 잡지의 편집진이 현실 문제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별나라'는 1926년 6월부터 1935년 2월까지 발행됐다. 이 잡지는 보통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적 독서물과 동요, 동화를 수록했다. '신소년'과 더불어 이주홍의 프로문학 운동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소년잡지다.
'별나라' 1933년 12월호 표지화는 '별나라'란 문자 디자인을 제외하고 모두 향파가 그렸다. 별나라를 에스페란토어로 쓴 'La Stela Mondo'가 눈에 띈다. 영어로 'The Star World'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을 추구했던 젊은 청년들 사이에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는 것은 국제적 연대를 위해 긴요한 일이었다. 오른쪽에는 노동자 복장을 한 남성이 깃발을 든 아이를 목마 태우고 걸어간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어른과 소년을 뜻한다. 이들이 바라보며 나아가는 방향에는 소비에트 러시아 이상사회의 행복한 아이들 사진이 있다. 잡지 편집진은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생각했던 것이다.
'소년잡지 표지화전'은 19~31일 이주홍문학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또 '이주홍 어린이백일장'은 19일 오후 2~6시 금강공원 내 이주홍문학의 길에서 개최된다. '제32회 이주홍문학상 시상식'은 25일 오후 6시 30분 향파문학당에서 열린다. 이주홍 생가, 일해공원 향파시비, 합천 박물관, 합천 해인사 등을 둘러보는 '이주홍문학기행'은 6월 3일 마련된다. 051-552-1020.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