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자본 탈출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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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경제부 차장

집, 회사 팔고 똘똘한 한 채 찾아 서울 이동
소득보다 자본 수익률 커지며 불평등 심화
자본 머물고 싶은 부산 만들어야 청년 남아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생 A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응.” “아직 부산에 살고 있나 해서.” “당연하지. 부산일보 다니는데 어딜 가.”

몇 번의 문자가 더 오간 뒤, A는 해운대 마린시티 아파트를 팔고 서울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지금 안 갈아타면, 진짜 서울 집 못 살 거 같아서. 좀 서둘렀어.”

부산에 살고 있냐는 말이, 몸이 부산에 있느냐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몸과 영혼을 나누듯, 사는 집과 자본을 나눈다면 너의 자본이 부산에 아직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영혼과도 같은’ 자본을 ‘상급지’ 서울로 옮긴 분투기를 듣고서야, ‘아직’ 부산에 살고 있느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A는 주식에 ‘젬병’이었던 기자에게 미국 주식 시장이 꽤 괜찮은 투자처란 걸 처음 알려줄 때처럼, 최대한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돌려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A의 자본은 ‘유출’이 아니라 부산을 ‘탈출’했다.

‘돈깨나 있는’ 시니어층 사이에서도 건물을 팔고, 회사를 팔고 자식들 있는 서울에 집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수십 억 건물을 부산에 놔둬 봐야 오르지도 않고 공실과 임대 관리로 골치만 아픈데 서울 ‘똘똘한 한 채’를 사 눌러 앉으면 걱정도 사라지고, 자식 손주도 더 자주 볼 수 있으니 ‘돈 싸들고’ 서울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자리 잡은 자녀들이 가업을 승계할 마음이 없으니, 회사를 매각한 뒤 자금을 챙겨, 자산 가치가 보장되는 서울로 향한다고 했다. 지역에서 창출된 부는 더 이상 지역 재투자나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자본 시장으로, 무서운 속도로 탈출하고 있다.

‘청년’뿐 아니라 ‘자본’도 서울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역은행들은 지역에서 빌려줄 돈이 모자라 수도권에서 고리로 자금을 끌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곳곳에서 자본 탈출이 일상화되고 있고, 이를 다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지방의 자본 탈출은 지역 경기 침체와 투자 감소, 다시 인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탱한다.

자본이 스스로의 증식을 위해 더 넓고 비옥한 땅으로 떠나는 것이 자본주의 생리라지만, 자본이 떠난 지역의 경제는 쪼그라들고, 일자리는 더 사라지게 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을 앞설 때 자산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했다. 성장률이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소득보다 과거에 축적했던 부가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년 성실히 일해 번 근로 소득과 사업 소득은 서울에 사둔 아파트 한 채 가격 상승분을 절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 됐다. 부산의 산업 성장이 정체된 사이, 서울의 부동산과 주식 등 자본 자산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새로 생겨난 ‘반도체 계급’과 ‘돈 복사기’로 불리는 삼전닉스 등의 주식 호황은 수도권으로 자본을 더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A가 “지금 안 갈아타면 영영 못 갈 것 같다”고 서두른 이유도 바로 이 r과 g의 격차를 몸소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자본 수익률쯤은 가뿐히 뛰어넘을 것 같은 전문직 A의 소득으로도 r과 g의 격차를 체감하고 서두를 정도면, 다른 직업군은 말해 무엇하랴.

실제로 지난해 상위 20%의 순자산이 7.9% 늘어나는 동안 하위 20%는 오히려 4.9% 감소하며 자산 격차가 7.82배까지 벌어졌고,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역대 최악인 0.625를 기록했다. 한국은 OECD 주요 선진국 18개국 중 5번째로 불평등한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행 이슈노트에 따르면 지역 격차의 확대는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 자산 4분위(상위 25%)의 자녀는 1분위(하위 25%) 자녀에 비해 수도권 이주 확률이 43%포인트 높고,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 이주를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는 부모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들에게만 집중된다. 자본 탈출은 수도권에서의 자녀 계급 상승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가 결국 경제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경고했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교육 의욕, 노동 의욕이 떨어져 인적 자본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자본에 대고 애향심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제로 발을 묶어둘 수도 없다. 그보다 자본이 지역에 남는 편이 더 합리적일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세금이 가볍고, 유동성이 좋으며, 가격 상승 기대가 클수록 자본은 부산에 남을 수밖에 없다. 6·3선거에서 부산시민의 선택을 받을 시장은 부산을 청년, 기업이 머물고 싶은 도시뿐 아니라 자본이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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