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에밀리 데이비슨과 여성의 참정권
제롬 데이븐포트, Sylvia Pankhurst Mural, 2018, Bow East London, Wikimedia Commons.
선거를 앞두고, 1913년 6월 4일의 사건을 떠올린다. 런던 근교 엠섬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린 ‘더비 경마대회’에서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은 여성 참정권을 부르짖으며, 국왕 조지 5세 소유의 말 ‘엔머’(Anmer)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말발굽에 밟히는 중상을 입고,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국 내 여성 참정권 운동이 더 격렬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영국 정치권은 1918년,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1928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보통선거권을 인정했다.
미국 역시 오랜 여성운동 끝에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했다. 프랑스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나라’ 스위스조차 무려 1971년에 연방 차원의 여성 선거권을 허용했다.
한편 한국 여성은 1948년 제헌헌법과 함께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여성들이 수십 년 동안 거리 시위와 투옥, 단식투쟁 등을 거치며 쟁취한 권리와는 다소 달랐다. 근우회나 여성 계몽운동 등 중요한 여성운동이 있었지만, 서구의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처럼 여성 참정권 자체가 사회 전체의 거대한 정치적 갈등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여성의 정치적 권리가 법적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인정되었음에도, 그것이 사회적 감각과 문화 속에 충분히 내면화되는 과정은 더뎠다. 오늘날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언어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스트리트 아티스트 제롬 데이븐포트(예명 Ketones6000)는 런던 동부 보우(Bow)의 동네 펍 ‘로드 머페스’(Lord Morpeth)의 외벽에 스프러제트 운동가 실비아 팽크허스트를 그렸다. 거대한 얼굴은 도시의 벽면을 점유하며, 주변부에 존재하던 여성들의 정치적 존재를 다시 거리의 중심으로 호출한다. 이 작품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집단적 기억과 노동계급 여성들의 정치적 각성을 담은 공공미술에 가깝다.
현대의 거리미술 작업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민주주의 문제로 다시 환기한다. 이들의 중요한 미학적 의미는, 박물관에 박제된 역사를 거리와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서프러제트 벽화는 역사 삽화를 넘어, 도시의 벽을 공적 기억 장소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이미지이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한때 거리 시위와 행진, 체포와 투옥 속에서 이루어졌듯, 오늘날의 거리미술 역시 제도권 밖의 목소리를 공적 공간에 다시 출현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때 예술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잊힌 존재들을 현재의 감각 속으로 다시 소환하는 기억의 실천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