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티어] ‘될 때까지’ 투자해 부산형 유니콘으로 키웁니다
서종군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원장
창업가와 사람·자본의 연결 플랫폼
스케일업-글로벌 진출 성장 사다리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문을 연 이유
스타트업 성장이 곧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함께 창업 도시 힘 모으면
세계로 나아가는 부산의 미래 열려
2025년 9월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회 부기테크 투자쇼.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제공
부산에서 만난 한 창업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투자를 받으려면 결국 서울로 가야 하더라고요.” 좋은 기술과 시장, 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다리가 부족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것은 한 기업의 하소연이 아니라 지역 창업 생태계가 마주한 질문이다. 우리는 창업가를 잘 키우고 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묻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린아이에게는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서 언젠가 사회로 나가야 한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예비 창업자와 초기 기업 보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려면 보육을 넘어서야 한다. 넘어선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성장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그동안 지역 창업 정책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다. 창업 교육을 하고, 사무실을 제공하고, 시제품 제작을 도왔다. 그러나 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보육은 출발선에서 끝난다. 창업 기업도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큰 시장과 인재, 과감한 자본을 만나야 한다. 나는 창업 보육의 끝판왕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투자는 “시장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신호”다. 창업가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다리다.
부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좋은 기술과 창업가는 있지만, 성장의 순간마다 서울을 바라보게 된다. 투자자와 고객, 멘토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창업가가 부산에 남아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부산에서 창업하고, 투자받고, 글로벌로 진출하는 길을 충분히 열고 있는가.
저수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지듯, 지역 창업 생태계에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좋은 창업자·멘토·투자사가 부산에서 만나야 한다. 멘토는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어야 하고,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이 아닌, 기업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만남이 많아질수록 창업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는다.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하려는 일도 바로 그 물결을 만드는 일이다. 창업-스케일업-글로벌 진출까지 끊김이 없는 성장 사다리를 놓고, 창업가가 필요한 순간에 사람과 자본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부기테크’ 같은 IR 채널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부산에 좋은 스타트업이 많다고만 해서는 부족하다. 보여줘야 한다. 보여야 연결되고, 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왜 스케일업하는 스타트업을 키워야 할까? 답은 일자리에 있다. 피지컬 로봇 자동화가 확산하면 AI, 대기업의 정형화된 일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은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이 드물다. 한 사람이 기획·영업·기술을 함께 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고객이 늘수록 다양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성장 자체가 일자리다.
그렇다면 지역은 일자리를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스스로 만들어낼 것인가? 일본 구마모토가 TSMC 유치를 계기로 지역 산업과 인재 흐름을 바꾸고 있듯, 지역 혁신에는 강한 앵커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산의 앵커를 외부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부산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을 키워 대기업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부산의 미래 혁신 전략이다.
이제는 창업 숫자보다 성장의 깊이를 물어야 한다. 지역 펀드를 키우고 투자사가 부산에 머물게 하고, 대학과 병원, 항만, 공공기관이 스타트업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도 창업을 도시의 미래로 받아들여야 한다. 창업은 일부만의 도전이 아니라, 지역 일자리와 산업을 바꾸는 도시의 과제다.
어린아이를 보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고등학생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부산 창업 정책은 보호에서 성장으로, 지원에서 투자로, 행사에서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혼자 가면 길이 되고, 같이 가면 역사가 된다”라고 했다. 창업가 혼자서는 길을 만들 수 없다. 멘토와 투자자, 대학·기업·시민이 응원할 때 그 길은 도시의 역사가 된다. 창업가가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 부산에서 자라고, 투자받고, 세계로 나가는 도시. 부산은 “될 때까지” 키우는 도시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