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유’를 멈추면 주권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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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순 동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선거 문자와 SNS의 자극적인 영상, 실현 가능성보다 눈길부터 끄는 공약들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정치가 우리 삶을 보듬는 대안의 장이 아니라, 마치 누가 더 자극적인가를 겨루는 쇼윈도가 된 듯한 기분이다. 소음에 지친 유권자들은 “정치는 다 똑같다”며 고개를 돌리지만, 정치를 외면하는 바로 그 순간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최근 선거판을 보면 클릭베이트(Clickbait) 공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표를 얻기 위해 예산이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일단 던지고 보는 공약들을 의미한다. 이런 공약들은 유권자의 깊은 고민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찰나의 순간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길을 사로잡고, 당장의 이득을 약속하며 유권자를 유혹한다. 당장은 입에 달콤하지만 공동체의 미래에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공약들이다. 정책이 국가의 백년대계가 아닌 ‘클릭 수’를 높이는 마케팅 도구가 될 때, 유권자의 주권은 미끼를 기다리는 물고기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정교한 AI 알고리즘은 이런 미끼에 쉽게 걸려들게 만든다. AI는 우리가 클릭한 혐오 콘텐츠나 특정 진영의 주장만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필터 버블 현상을 유발한다. 유권자가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약한지 데이터로 분석해, 딱 입맛에 맞는 선동적인 문자나 네거티브 정보를 보낸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환경 속에서, 유권자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 진영 논리에 갇힌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과거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던 이들은 괴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일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짚어냈다.

오늘날의 유권자에게 요구되는 윤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쏟아지는 문자 메시지와 SNS 공세 속에서 비판적인 사유를 멈추는 것, 네거티브 정보에 무작정 동조하거나 혹은 귀찮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현대판 사유의 정지라 할 수 있다. 생각을 멈추고 시스템이 던져주는 정보에만 몸을 맡길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정치를 돕는 방관자가 되고 만다.

“나 하나 투표 안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어?”라는 생각은 책임감을 분산시키고, 결국 정치를 선동가들의 놀이터로 만든다. 하지만 방관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유권자가 눈을 감으면 정치는 더 자극적인 네거티브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이제 구경꾼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때다. 미끼처럼 던져지는 공약 뒤에 숨은 실체를 따져 묻고, 알고리즘이 배달하는 증오의 언어를 이성의 힘으로 거부해야 한다. 내 주권을 알고리즘과 선동가들에게 약탈당하지 않겠다는 지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투표는 단순히 선거일에 도장을 찍는 행위가 아니다. 수많은 거짓과 비난 속에서 무엇이 진짜 우리를 위한 길인지 찾아내는 지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청년 유권자부터 전 세대에 이르기까지 비난의 말들에 속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가 정책을 따지고 진실을 찾으려 노력할 때, 비로소 정치는 시민을 두려워하고 시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유하는 시민만이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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