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 대신 ‘당원 게시판’에 갇혀버린 국민의힘
‘이재명 리스크’ 발판으로 쇄신 통해 정국 주도권 찾자 무색
친윤-친한, “당무감사” “자중지란” 연일 공개 설전
“모처럼 지지율 올릴 수 있는 기회 다 놓칠 판” 우려 점증
국민의힘 내부의 ‘온라인 당원 게시판’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잠잠했던 친한(친한동훈)-친윤(친윤석열) 계파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이후 대야 공세에 집중됐던 당력이 다시 내부 충돌에 소진되는 양상이다. 야당발 위기를 발판으로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야 할 때 소모적인 권력 다툼이 재연되는 듯한 모습에 당내 우려도 점증하는 분위기다.
논란은 반한(반한동훈) 성향의 유튜버가 이달 초 “한동훈 대표와 그의 아내 등 일가 7명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 내외를 비난한 글이 다수 올라왔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국민의힘이 2022년부터 운영해온 당원 게시판에 최근까지 올라온 글은 52만 9000여 건인데, 이 중 한 대표와 그 일가 이름과 동명으로 검색되는 게시물은 전체의 0.2% 정도인 1100여 건 정도로 전해졌다. 글 대부분은 윤 대통령 내외에 대한 비판과 한 대표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한 대표는 자신 명의의 글에 대해서는 “내가 쓴 글이 아니다”고 명확하게 부인했지만, 나머지 가족 명의의 글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고 있다.
친윤계는 이번 일을 ‘여론 조작’으로 규정하면서 당 자체 조사인 당무감사를 요구하며 한 대표의 의혹 해명을 연일 압박하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21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털어낼 것이 있으면 빨리 털어내고 해명할 것이 있으면 명명백백하게 해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오는 25일)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선고 때까지는 이 문제를 일단락 지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족 중 1인이 다른 가족들의 명의를 차용해서 여론 조작 작업을 벌였다는 게 (의혹의)핵심이다. 단순히 대통령을 비방했으니 당무 감사하자는 게 아니다”라면서 “한 대표가 복잡한 조사나 수사 이전에 가족들에게 집에 가서 물어보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거듭 압박했다. 한 대표를 줄곧 비판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은 “논란의 본질은 당 대표 가족들이 만약 그런 짓을 했다면 숨어서 대통령 부부와 중진들을 욕설로 비방하는 비열함과 비겁함에 있다”고 직격했다.
반면 한 대표 측은 이미 수사 중인 사안이며, 범죄 수사를 위한 영장 발부나 재판상 요구 등이 아니면 당원 명부를 열람·누설할 수 없다는 정당법 규정을 들어 당 차원의 조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범수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 가족과 이름이 같은 당원들은 ‘일반 당원’으로 당무감사 대상이 아니라면서 한 대표 가족의 게시글 작성 여부를 당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한 대표 가족들은 공인이 아닌 사인이지 않나”라며 선을 그었다. 한 대표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족이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고 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당원 신분에 대해 법적으로도 그렇고 (당원 보호를 위한)당의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변화, 쇄신, 민생을 약속했고 (지금이)그것을 실천할 마지막 기회”라며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당내 기류는 여권에 모처럼 찾아온 호기에 이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맞느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다. 부산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원 게시판에는 별의별 얘기가 다 올라오는데, 그 정도의 댓글로 ‘여론 조작’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어떻게든 한 대표에게 타격을 입히려는 친윤계 일부의 침소봉대 아니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문제를 두고 연일 공개리에 치고 받는 데 집 나간 지지율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 관계자는 “가족이 연루됐는지는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뭉개고 가려는 건 한 대표 답지 않다”면서 “만약 진짜로 가족이 연루된 사실이 있다면 어차피 드러날 일이니 깔끔하게 사과하고, 단속하겠다고 정공법을 택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