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공원 6·25 공적비 ‘흐릿’… 글씨조차 읽기 어렵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UN군 활동 기념 조형물 12개 중
독일·튀르키예 제외 10개 지워져
주민 “관리 안 돼 안타까운 마음”
남구청 관련 예산 올해 이미 소진
구청 “내년 유지·보수 검토 예정”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 내 국가별 기념상 가운데 일부 국가의 소개글이 흐릿하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 내 국가별 기념상 가운데 일부 국가의 소개글이 흐릿하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에 설치된 ‘6·25참전 UN군 활동 기념 조형물’ 대다수 공적비의 안내문이 흐릿하게 지워져 글귀를 읽기 힘든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남구청이 매년 예산을 투입해 공공조형물을 점검하지만 이 조형물은 올해 예산 부족으로 보수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6·25참전 UN군 활동 기념 조형물’ 공적비 12개를 확인한 결과 독일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국가는 공적비에 쓰인 설명 문구가 흐릿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공적비는 각 참전국이 한국전쟁 당시 군사·의료 지원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설명하는 안내문을 담고 있다.

독일·튀르키예 공적비를 제외하고는 음각으로 새겨진 국기와 글자 모두 색이 바래 전반적으로 흐릿한 상태였고, 특히 햇볕이 내리쬐면 빛 반사로 인해 글귀를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최 모(59) 씨는 “한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인데, 대부분 국가는 안내문이 흐릿해서 잘 읽을 수가 없다”며 “관리가 잘 안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앞서 남구청은 6·25전쟁 때 희생된 유엔 참전 용사와 참전국에 대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2014년 유엔평화공원에 ‘6·25참전 UN군 활동 기념 조형물’을 건립했다. 15m 높이 기념상은 묵념하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이 기념상을 참전국 공적비 12개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남구청은 지난해 5월 공적비 11개에 세척과 채색, 표면 처리 등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먼지가 쌓이고 비바람에 염료가 씻겨나가, 공적비는 1년 만에 다시 흐려졌다.

독일·튀르키예 공적비만 선명도를 유지한 것은 남구청이 지난해 12월 두 국가 공적비를 새로 조성·정비하면서 기존의 돌 음각 방식 대신 알마이트 UV부착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2018년 의료지원국으로 인정돼 지난해 공적비에 새로 포함됐다. 부산지방보훈청이 지난해 4월 독일 공적비 설치를 요청하면서 남구청은 신규 조성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튀르키예 공적비도 변경된 국호를 반영해 함께 정비됐다.

남구청은 상하반기로 나눠 구내 공공조형물 66점을 정기 점검하며, 오염도·파손도·시급성을 기준으로 보수 대상을 선정해 관리한다.

그러나 올해 공공조형물 관리 예산 1100만 원 중 ‘6·25참전 UN군 활동 기념 조형물’ 정비에 사용된 예산은 없다. 올해 예산은 유엔 창설 80주년 기념 유엔참전군 기념탑 세척 작업으로 모두 소진됐다.

남구청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정해진 구 예산으로 공공조형물 66점을 모두 관리해야 하다 보니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정비가 시급한 조형물에 예산을 먼저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공공조형물 유지·보수 예산을 올해 대비 상향 편성할 예정이고 추후 점검 결과에 따라 공적비 정비·보수를 검토하겠다”며 “알마이트 UV 부착판으로 안내문을 교체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