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깜깜이 외주화' 방지할 '건설 이력 확인제' 의무화해야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일용직 노동자 희생
실제 경력 검증 숙련공 투입해야 안전 담보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엿새째인 11일 오전 발전소 보일러타워 4호기 6호기가 발파 해체 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발파 4호기 6호기 발파 직후 8개팀 70여명을 투입해 붕괴 사고가 난 5호기 주변으로 수색을 벌일 예정이다. 연합뉴스
9명의 사상·실종자를 낸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고는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와 ‘주먹구구식 일용직 채용’이라는 후진적 관행이 결합해 빚은 참사라는 분석이다. 이번 공사는 발주처인 동서발전이 HJ중공업에 시공을 맡기고, HJ중공업이 이를 발파·철거 하청업체인 ‘코리아카코’에 하도급한 다단계 구조로 진행됐다. 붕괴 사고는 소량의 화약으로 약 60m 높이의 보일러 타워를 넘어뜨리기 위해 철골 기둥 일부를 잘라내는 ‘사전 취약화 작업’ 중 발생했다. 이 작업은 40년 넘은 구조물을 정교한 계산하에 해체하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장 투입 인력은 전문성과 거리가 멀어 사고 위험성을 키운 셈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는 고질적인 안전 사각지대를 만든다. 하청업체는 원가 절감 압박 속에서 숙련 인력 확보나 충분한 안전 교육을 하기 어렵다. 이번 사고로 매몰된 7명은 모두 코리아카코 소속으로 정규직은 1명뿐이고, 나머지 6명은 초보 일용직에 가까운 계약직이라고 한다. 이처럼 전문 현장에 비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배경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따른 비용 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는 일당 35만 원짜리 작업에 25만~30만 원의 숙련공 대신, 18만 원짜리 초보 인력을 투입해 차액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 비용 절감을 우선한 죽음의 외주화에 일용직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산업 현장에서 안전을 수없이 강조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인력 수급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위험한 작업을 다루는 현장에서 ‘깜깜이 채용’ 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이력서도 없이 인력사무소를 통해 채용된 작업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된다. 건설 현장에서는 소장이나 반장이 이력서 검증 없이 인맥으로 사람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심지어 개인적 친분이 있으면 기능이 없는 사람을 기능공으로 쓴다니 어이가 없다. 이처럼 전문성 없는 단기 인력에 위험한 작업을 맡기는 구조에서는 사고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깜깜이 외주화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건설 노동자 이력 확인제’를 도입해야 한다. 채용 때 4대 보험 득실 확인을 의무화해 실제 경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기능공, 조공 여부를 구분해 검증된 숙련공 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투명한 고용정보 체계를 확립하고 근로자 숙련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산업 현장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호주의 제도를 참고해 2021년 5월부터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플랜트건설 현장 등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깜깜이 외주화를 해결하고, 일용직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을 막을 제도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라는 말만 반복될 것이다.